논문 수 정량평가 의존… 베끼기 표절 느는 배경

대학에 쓴소리 입막음하는 압박용 수단, 경쟁심화 우려도
단순 양적 평가에서 벗어나 질적 평가로 개선요구 목소리

[한국대학신문 차현아‧김소연 기자] 최근 중앙대가 교수업적평가를 근거로 교수에게 징계처분을 내리면서 대학들이 시행하는 교수평가가 주목받고 있다. 대학 경영진들은 교수업적평가를 강화해 정년보장을 받은 후 성과를 내지 않고 느슨해지는 교수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교수들은 교수업적평가가 연구업적을 독려하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비판적인 교수들의 입막음 수단으로 쓰이거나 학문 발전이나 교육의 질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교수평가의 시작은 연구업적 강화= 우리나라에서 교수업적 평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후반이다. 1995년 교육부 국책대학원 지원사업이 실시되면서 교수의 업적을 논문 수로 평가하는 방법이 처음 도입됐다. 1999년 교육공무원법에서 대학 교원의 업적과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교수업적평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1994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대학종합평가인정제를 기점으로 정부의 대학 평가를 강화하는 흐름은 각 대학들의 교수업적 평가의 도입을 촉발했다. △연세대(1994년) △서울대(1995년) △고려대(1996년) △전남대(1996년)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1998년 교대를 제외한 전국 4년제 대학 가운데 72.3%가 교수업적 평가제를 도입했다. 특히 국공립대의 경우는 92.3%가 교수업적 평가제를 시행했다.

교수업적평가의 목표는 연구업적 향상을 통한 대학경쟁력 강화다. 최근 대학들은 국내 대학 순위뿐만 아니라 해외 순위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들은 국내 대학이 해외 대학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연구 역량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교수평가가 필요하다는 수준에 그쳤던 90년대 상황과 최근의 대학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특히 교수업적평가 강화는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입학정원을 감축한 대학들은 등록금 감소로 심각한 재정 압박에 봉착했다. 대학들은 교수업적평가를 근거로 호봉제에서 성과연봉제로 갈아타거나 승진심사 요건을 까다롭게 해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 교수 업적 평가 ‘부작용’ 속출…학문 생태계 흔들 = 교수업적평가의 문제로 가장 많이 지적된 건 정량평가에 기댄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들은 국내 학술지, 국제저명학술지, SCI‧SSCI‧SCIE 등에 등재된 논문 수를 연구영역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교수들은 교수업적평가가 지나치게 정량지표에만 의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수가 마치 ‘논문 쓰는 기계’ ‘연구비 따오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연구영역 외에 교육‧봉사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비슷한 점수를 받기 때문에 논문 게재 편수가 교수 평가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수도권 A대학의 경제학 전공 모 교수는 “연구의 양적 지표만 강조하다보면 교수들이 어떻게든 논문 하나 더 써내려고 논문 중복게재나 표절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런 평가기준으로 우수한 논문이 나오기는 요원하다는 부정적 반응이 터져나온다. 강병개 성신여대 교수(수학)는 “세계 수학계의 350여 년간의 숙제였던 ‘페르마 정리’를 증명한 앤드류 와일즈 교수는 프린스턴대에서 10년 동안 페르마정리 연구만 했다. 만약 이 교수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진작 재임용 탈락했을 것”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교수서열화, 경쟁 심화로 학문의 발전보다 교수 사회가 분열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수도권 B대학 모 교수는 “논문을 많이 쓴 교수는 시샘과 질투의 대상이 된다. 상대 교수의 실적이 곧 나의 연봉 동결 혹은 삭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수평가가 강화되면서 교수들이 대학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영 인하대 교수(국어교육학)는 “소신을 가진 교육자, 바른말 하는 교수들이 위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평가 강화는 침묵을 양산하고, 교수들의 자유로운 학술 연구는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징벌적 교수평가,  독이냐 약이냐= 최근 연구 성과가 낮은 C등급 교수에게 징계처분을 내린 중앙대의 교수업적평가가 대표적인 ‘네거티브’방식으로 꼽힌다. 중앙대는 연구업적이 5년간 없는 교수에게 강의를 아예 배정하지 않고 연봉을 3분의 1만 받는 처분을 내렸다.

이와 같은 중앙대식의 교수업적평가에 대해 교수사회에서는 ‘방향은 맞으나 방법이 틀렸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장기적으로 연구업적을 끌어올리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배영찬 한양대 교수(화학공학)는 “물론 해외대학들도 교수평가결과로 해임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외국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연구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연구비 지원도 적은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징벌적 조치는 연구 성과를 독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방법”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교수들 사이에선 학문 단위 특성을 반영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계가 유용한 연구를 내놓았는지 판단해 질적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 교수는 “학문을 발전시킨 연구는 학계가 더 잘 안다. 학계에서 인정받은 연구에 대해 지원해주는 방식이 학문 발전을 이끈다”고 조언했다.

박순준 사립대학교수연합회 이사는 “전공마다 논문을 많이 쓸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함께 놓고 교수를 상대평가 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연구재단 같은 기관에서 전국 각 학계의 평균 논문 수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대학이 업적평가의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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