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육의 혁명”인정하지만 무턱대고 움직이기보다 철학 가질 필요

교육부는 한국형 무크 계획 중, 대학가에선 “대학 자율성 고려해야”

[한국대학신문 이재익 기자] 미래를 향한 대학들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됐다. 무크(MOOC·온라인공개강좌)가 가져온 바람이다. 무크는 단순히 수업 동영상을 제공하던 오픈코스웨어(OCW)에서 한층 더 발전한 온라인공개강좌다. 전용 플랫폼과 SNS로 수업부터 시험과 과제 제출까지 운영돼 차세대 미래교육의 아이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더 이상 먼 미래의 일도, 몇몇 대학만의 일도 아니다. 주요 대학들을 필두로 무크의 활용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교육부도 무크 활용 방안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아직 국내에서 무크에 대해 확실히 정립된 것은 없다. 그만큼 많은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 고민하는 것도 발전의 한 과정이다. 무크에 대한 대학마다의 철학들도 조금씩 다르다.

■ 국내 무크 도입 현황 서울대·KAIST 선봉, 전담 TF팀 꾸린 대학도

국내 대학들의 무크 운영은 서울대와 KAIST를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무크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이 아닌 직접 강의를 올리고 과목을 운영하는 대학은 국내에서 서울대가 처음이다. 서울대가 무크 업체인 에드엑스와 계약했고 곧이어 KAIST도 코세라와 계약했다. 현재 서울대는 에드엑스에 2과목을 올렸고 KAIST는 코세라에 3과목을 올렸다. 서울대는 이전에 올린 2과목이 종강됐고 이어서 2과목을 더 올릴 예정이다.

뒤이어 뛰어든 연세대는 9월부터 무크 전담 TF팀을 꾸렸다. 퓨처런과 코세라 두 업체와 모두 계약을 맺었다. 내년부터 직접 강의를 운영할 예정이다. 무크 업체 중 복수의 업체와 계약하고 운영하는 것은 국내 최초다. 연세대 김미정 오픈&스마트에듀케이션 추진 TF팀장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현대 교육의 혁명이 될 것”이라 말했다.

특히 무크는 지방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대학들에게 또 다른 발전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미정 팀장은 “각각 떨어져 있던 캠퍼스를 무크로 일원화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학부모와 동문들에 대해서도 무크를 통해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제9회‘2014 이러닝 코리아’가 지난 17~19일 사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 무크 통한 대학 발전 고심, 개성 넘치는 철학들

무크가 대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안에 어떤 철학을 담으려고 하는가는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다. 단순히 다른 대학들이 시작했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07년 OCW를 국내에 처음 도입했던 고려대는 이번 학기 블랙보드 시스템으로 내부 학습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부 수업을 블랙보드무크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절약된다. 김규태 교수학습개발원장은 “무크는 OCW와는 달리 학교에 책임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블랙보드의 무크서비스는 이미 시작됐지만 내년부터 무크를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러닝코리아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는 블랙보드 코리아 유혜진 이사는 “지난 7월 블랙보드 무크 포맷이 오픈됐다. 내부 시스템에 강의를 올린 포맷을 그대로 무크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대학들이 무크에 강의를 올리는 노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KAIST는 이미 실행하고 있는 내부 교육시스템인 에듀3.0을 토대로 무크를 연동해 대학교육시스템을 선도해나가고자 한다. 이태억 교수학습혁신센터장은 “미래에 강의는 교과서와 같은 자료가 된다. 무크를 통해 매년 업그레이드되는 강의을 듣고 실제 수업에서는 토론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는 일단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올해 초 디지털 휴머니티즈 센터를 발족해 코세라, 에드엑스 등 무크 업체들을 연결한 ‘글로벌 MOOC 캠퍼스’사이트를 오픈했다. 세계 최초로 스터디 그룹과 튜터 시스템도 사이트 내에 함께 마련됐다.

김형률 디지털 휴머니티즈 센터 소장은 “일단 만드는 것보다 이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중요하다. 무크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일단 무크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학생들이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익숙해지면 교수와 학교도 자연스럽게 시스템에 적응될 것”이라 주장했다.

경희대가 계획하고 있는 무크는 더욱 큰 개념이다. 경희사이버대와 함께 ‘무크 2.0’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서구 중심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의 교육이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성장하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국내외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동일 문화권 지식을 공유하려는 것이 목표다.

경희사이버대 어윤일 교수는 “인터넷이 설치되지 않은 곳까지 무크 교육이 이뤄지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지식을 쌓아 나가면서 새로운 21세기 교육생태계가 마련될 것”이라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겠지만 국내외 대학들과 연계하면서 진행할 예정”이라 밝혔다.

■ 교육부 ‘한국형 무크’ 계획, “대학과 지속적인 대화 통해 추진할 것”

교육부에서도 한국형 무크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평생학습의 일환으로 무크를 논의했다. 8월 중순에는 평생학습 담당부서에서 대학재정지원부서로 업무가 이관됐다. 무크가 대학에서 먼저 실시되는 만큼 더 세부적인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2015년 예산도 확보했다. 11월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완성하고 내년 상반기에 시스템 발주를 하고자 한다. 무크 수료와 인증은 별도 기관을 선정할 예정이다.

교육부 대학재정지원과 박형식 사무관은 “한국형 무크를 만들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대학의 모습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한국형 무크라는 공통 플랫폼을 마련하면서 국내대학들의 강의를 쉽게 접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교수법도 계속 개선하려는 것이다. 현재 외부 플랫폼을 사용할 때 언어적 장벽 등으로 수요자의 한계가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라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대학가에서는 교육부의 이런 움직임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아직 무크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없는 만큼 각 대학들이 각기 다른 철학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데 정부가 틀을 만들어버리면서 창의성과 자율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하나의 한국 무크라는 틀에 국내 대학들의 무크 강의가 들어간다면 각 대학들의 정체성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 무크를 통해 학교를 알리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하버드 등 세계 명문대학들이 무크 강의를 쏟아놓고 있는데 그런 틀을 만들어버리면 자칫 우물 속에서만 경쟁하게 될 수 있다”며 염려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예전 OCW도 대학 나름대로 좋은 콘텐츠들을 공개하고 있었지만 교육부가 KOCW를 출범시키면서 대학평가에도 반영되는 등 강제성을 띄우기 시작했다. 이후 각 대학들이 더 나은 교수법이나 아이디어들을 생각하기보다 교육부 기준에만 맞춰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학들이 고민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KOCW 관계자는 “KOCW가 대학평가 공시항목으로 들어간 것은 최소 기준을 만들어 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한때의 붐이 아닌 꾸준한 강의 공개를 통해 대학이 사회에 공헌하도록 하는 것을 추구하고자 한다. 과도기적 상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대학들, 도전적이면서도 신중한 무크 움직임

무크 운영의 선두에 나서면서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대학도 있지만 힘을 비축하며 신중함을 보이는 대학도 있다. 공통적인 생각은 질적 측면에서 세계 무크 시장에서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양적 측면이나 속도 측면에서 앞서나가려고 하기보다 일단 콘텐츠 강화에 더 힘을 쏟을 때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가장 먼저 무크를 운영하기 시작한 서울대도 신중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교수학습센터 김선영 연구교수는 “도입 시기라 그런지 강의 하나하나를 운영하는 것도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에드엑스에 강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코세라와 퓨처런 두 곳에서 모두 제안이 왔다. 하지만 에드엑스 하나를 운영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거절했다. 당분간 강의의 질적 발전에 더 신경을 쓰려 한다”고 말했다.

퓨쳐런과 계약해 하반기 무크 강의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성균관대도 비슷한 입장이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를 내놓아도 훌륭한 수업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대학에서 운영하는 과목들과 차별성이 있도록 질을 고도화시키는 중”이라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교육환경의 개선이다. 무크와 관련된 것만 변화시킨다고 대학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무크가 국내 대학에서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교육 환경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려대 김규태 원장은 “내부적 학습 환경이 변했을 때 학생도 교수도 변할 수 있다”며 “대학마다 철학을 가지고 행동할 때”라고 주장했다. KAIST 이태억 센터장도 “토론 등 KAIST가 지향하는 실질적 교육이 이뤄지도록 강의실 인테리어를 바꿨다. 내부 교육시스템이 바뀔 때 모든 변화가 수월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김형률 소장은 “수업에서 일단 무크를 활용하기 시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단 해봐야 아는 것”이라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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