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인정하는 대학협의체 자율적 인증평가 체계 존중해야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올해 11월 시행 예정인 대학구조개혁 평가 지표 초안이 나왔다. 지난 9월 30일 공청회에서 공식 발표된 이 초안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산하 평가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학기관평가인증(이하 인증평가) 기준과 많이 닮았다. 

대학협의체는 물론 대학 총장들은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평가, 국책사업 선정 평가, 대학구조개혁 평가 등 각종 평가에서 인증평가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은 대체하자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최근 언론사 평가까지 늘어나 대학 내부적으로 소요되는 행정 인력이 상당한 데다, 피로도가 겹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대학구조개혁평가 지표가 기존 인증평가 틀, 그 중 ‘학부교육’ 분야만 중심으로 떼놓은 것 같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책연구진과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을 평가하는 척도 자체가 다를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목적과 출발선부터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평가결과가 대학구조개혁에 활용되는 만큼 정부주도 평가는 대학협의체의 자율적인 평가보다 엄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인증평가는 대학들이 신청하기만 하면 거의 다 받지 않느냐는 간단한 ‘한줄 평’까지 곁들인다.

이에 대해 평가 전문가들은 혀를 내두르고 있다. 자율적 인증평가 체계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은 100년이 넘도록 이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학협의체 성격의 비영리기구 ‘고등교육인증위원회(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CHEA)’는 3000개가 넘는 대학들을 검증하고 있다. 대학 역사가 깊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해 일본, 대만, 홍콩 등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국가들은 모두 정부가 인정하는 평가전담기구에서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협의체 인증평가 척도는 지난 1982년부터 30년 이상 정밀하게 가다듬으며 대학 질 관리에 기여해왔다. 4년제 대학만 현재 대학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 풀(pool)이 700명가량이며, 200개에 달하는 대학 중 인증 기준에 미달될까봐 신청조차 못한 대학이 아직도 20여 곳이다. 신청했더라도 탈락했거나, 인증 유예·조건부 인증을 받은 대학들도 있다.

법적으로도 인증평가에 대한 전문성은 보장돼 있다. 지난 2008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령으로 『고등교육기관의자체평가에관한규칙』, 대통령령으로 『고등교육기관의평가인증등에관한규정』을 두는 등 법적 근거를 한층 강화했다. 고등교육법 11조에 기술된 ‘정부가 대학에 행정적 또는 재정적 지원을 하려는 경우에는 평가 또는 인증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 조항은 이 점을 방증한다.

그런데도 정책연구진은 추후 협의체와의 논의를 통해 인증평가와의 연계방안을 찾겠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학협의체의 평가인증체계를 존중해달라는 대학가의 요구는 단순한 행정 민원이 아니다. 그 자체가 곧 대학의 양심과 전문성, 자율성을 상징하는 ‘마지막 보루’다. 자칫 인증평가마저 정부주도로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 된다면, 그날이 이 나라의 대학 자율성이 끝내 수장(水葬)되는 날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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