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세우기’식 대학평가에 대학 본질 훼손 심각

북미지역 대학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반대 움직임
“정량 지표로 대학 가치를 재단… 서열화 조장해”
대학의 질 담보ㆍ특성화 끌어내는 지표개발 절실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고려대 총학생회가 특정 언론사의 대학순위평가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대학순위평가가 정량화 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를 무분별하게 재단하고 끝내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첫발을 내디딘 학생들 주관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보다 일찍 대학순위평가를 실시한 북미지역도 이미 거부운동을 벌여 개선방안을 논의중이다.  대학순위평가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무엇인지, 대학순위평가를 통한 교육의 질 제고 방향과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고 고민하고 그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한국,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 첫발을 떼다 = 지난 6일 중앙일보는 전국의 대학순위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고려대를 비롯해 경희대, 국민대, 동국대, 서울대, 성공회대, 연세대, 한양대 등 8개 대학의 총학생회는 서울 중구의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대형화와 국제화라는 미명 아래 진리추구의 상아탑 대학의 본분을 망각했다”면서 중앙일보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학순위평가에 대해 “평가기준을  정량화하고 평가의 선정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대학 본부가 그 파급효과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며 “대학은 지표를 올리려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을 마구잡이로 채용하고 지방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 대신 교사 확보를 위해 대리석 건물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대학들이 평가지표 채우기 급급해 정작 힘써야 할 교육커리큘럼 체계 개선이나 학내 자치문화의 활성화 등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남수경ㆍ이기석 강원대 교수는 ‘언론기관 자국 내 대학순위평가의 현황과 쟁점분석’ 이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언론사의 대학순위 평가는 중복 평가로 인한 대학 구성원의 평가 피로도를 증가시키고, 평가의 내용보다는 순위에 집착하게 만든다”면서 “이러한 문제점은 미국ㆍ영국 등 국외 언론기관의 자국 내 대학순위평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북미지역 대학들 언론사에 자료제출 안하고 지지단체 구성도 = 1995년 대학순위평가 전체 10위 안에 줄곧 링크 된 미국 오리건 주의 리드대(Reed College)는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이하 US뉴스)’ 대학순위평가(American's Best Colleges)의 조사 참여 요청을 거부했다.

당시 리드대 입학처는 한 해 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WSJ)’이 폭로한 대학들의 ‘데이터 조작’ 의혹을 언급하며 “그 평가의 방법론과 유용성에 대해 평소 의문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또 스티븐 코블릭(Steven Koblik) 당시 리드대 총장도 US뉴스 편집장에게 “순위평가 프로젝트를 신뢰할 수 없으며 우리 대학은 순위평가 관련 어떠한 조사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드대가 조사를 거부하자 그 이듬해 리드대의 결정을 지지하는 조직이 창설됐다. 니콜라스 톰슨(Nicholas Thompson) 스탠포드대 학생연합 부회장은 당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리드대 결정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FUNC(Forget U.S. News Coalition)’을 만들었다”면서 “US뉴스 조사방식은 대학이 학생들의 교육보다 ‘순위’에 집착하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캐나다의 여러 대학들도 자국의 시사 주간지 ‘맥클린(MacLean)’의 대학순위평가 참여를 거부했다. 2006년 인디라 사마라세케라(Indira Samarasekera) 알버타대(Alberta University) 총장은 “시장에 의해 주도되는 순위평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시사잡지 ‘디 아틀랜틱(The Atlantic)’은 지난해 1월 31일자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대학 링킹 무시하기 연례보고(Your Annual Reminder to Ignore the U.S. News & World Report College Rankings)’ 기사를 통해 언론사 대학순위평가에 대한 비판 논리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US뉴스는 항상 지표를 조정해 연도 간 비교를 어렵게 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최신 순위평가를 구입하도록 이끈다. △평가의 행위는 순위에 의미를 제시하는 것으로 일종의 정밀함과 엄격함이 내재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미들머리대가 웨슬리안대보다 ‘13단계’ 높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학들의 수업료 인상하는 데 영향을 준다. 보다 많은 돈을 쓰는 학교가 평가에 유리한 구조다. △대학 직원들이 잘 알지 못하는 다른 학교의 상대적인 이점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없다. △‘순위’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지위불안을 가중시킨다.

한편 2005년에 시작된 미국 평가전문 월간지 ‘워싱턴먼슬리(Washington Monthly)’ 대학순위평가(Top Colleges &Universities)는 1983년에 대학순위평가를 시작한 US뉴스의 대표적인 후발주자로서 ‘국민의 세금 지원을 받는 대학의 책무성에 대한 평가’를 핵심과제로 삼았다. 워싱턴먼슬리 순위평가는 “미국은 대학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토대로 이뤄졌다. 남수경ㆍ이기석 강원대 교수는 ‘언론기관 자국 내 대학순위평가 현황과 쟁점 분석’이란 연구에서 “워싱턴먼슬리 대학순위평가의 목적은 국가 사회에 대한 대학의 책임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기존 US뉴스 그것과 차별화 된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과 안 던컨(Arne Duncan) 교육비서관은 행정부 자체 대학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학비가 적고 졸업생의 수입이 높은 대학일수록 높은 평가를 부여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정부의 새 대학평가의 골자로 기존과 같이 대학들에 순위(Ranking)를 매겨 ‘줄 세우기’식이 아닌 등급(Rating)을 설정해 대학의 대학교육의 질적 평가를 정부차원에서 제고하겠다고 표명했다. 현재 세부사항은 논의 중이다.

대학교육의 질 담보하는 대학순위평가, 대학 특성화도 살려 = 말도 많고 탈 도 많은 대학순위평가는 해야 되나, 하지 말아야 하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된다.  그동안 언론사 대학순위평가는 공공 책무성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활용돼 왔다. 각 언론사는 객관적 통계 지표들과 함께 교수ㆍ행정가 대상의 다양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각 대학의 질에 대한 순위를 부여했다. 이는 대중에게는 최고의 대학이 어디인지를, 대학에 재정지원 하려는 정부에게는 특성화 대학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이 내세운 대학순위평가 기준들이 각 대학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정량적 지표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고부응 중앙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대학 순위평가와 대학의 몰락’이란 연구논문을 통해 대학순위평가가 점차 대학을 기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면서 서서히 강조됐던 ‘대학의 책무성’이 90년대 들어 본격화 됐다”면서 대학평가는 대학의 책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라 강조했다. 그는 “인증평가는 대학의 기본 요건을 평가하는 책무성 평가인 반면 순위평가는 대학간 경쟁을 유도하고 이를 확인하는 책무성 평가”라면서 “대학들은 최소비용 최대성과라는 경제원칙을 대학운영 기본틀로 설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남수경ㆍ이기석 강원대 교수는 앞으로의 대학순위평가는 대학 특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이 다양화 특성화를 추구해 왔음을 고려할 때 그동안 한국 언론사의 대학순위평가는 정부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대학평가는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 이뤄져야 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특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대학순위평가는 대학의 질 제고의 방향을 올바르게 규정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학의 질 개념에 근거한 주요국 언론기관 대학순위평가의 문제점 분석’ 연구에서 이정미ㆍ최정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대학의 질을 명확히 대리하지 않은 평가지표는 대학의 개혁을 왜곡된 방향을 유도한다”며 “대학의 질을 명확히 하고, 이를 타당하게 대표하는 지표들을 활용해 대학평가 도구로서 대학순위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질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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