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후보자 물망… 여전히 과학자 처우 열악, 과제중심 지원 풍토 그대로

일본 2050년 노벨과학상 30인 목표 사실상 초과달성…40명도 가능할 듯
중국 ‘한결같은’ 과학자 최고예우…‘천인계’ 등 과학인재 육성 전략 막강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올해도 노벨 과학상 수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 넛크래커(nut-cracker)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벨상은 전세계 과학자들이 선망하는 최고 권위의 상으로 한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지표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인터넷에선 스포츠 경기의 점수를 빗대 한국과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경쟁을 ‘0대 19’로 표현하며 자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도 국가적인 과학육성 전략에 힘입어 가까운 미래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미 평화상(1명)과 문학상(2명)을 제외하고 토종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분야에서만 3명의 중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가운데, 올해에도 학술 정보 회사인 톰슨 로이터가 4명의 중국인을 과학분야 후보자로 거론하는 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안화용 한국연구재단 성과확산실장은 “지금 한국은 일본만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중국까지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백인계획’, ‘천인계획’, ‘만인계획’ 등으로 이름 붙인 국가 전략 차원의 과학인재 육성정책에 힘입어 최근 SCI급 논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과학분야 '넛크래커'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대학은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 과학자가 연구와 교육을 하며 몸담고 있는 곳이다. 이번에 청색 LED를 개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3명도 모두 일본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인물들로 화제를 모았다. 나고야 메이조대학의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와 나고야대학 아마노 히로시 교수는 지금도 일본에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미국 UC샌타바버라에서 연구하는 나카무라 슈지 교수도 학부와 석사는 일본의 오지인 시코쿠(四國) 지역의 국립대학인 도쿠시마대학에서 전자공학과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결국 이번 노벨 물리학상은 온전한 일본대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토종이든 아니든 우리만 타보지 못한 노벨상의 한중일 삼국지에서 한국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자 우려감 역시 커지는 배경이다.

■ 중국, 사람중심 지원 전략 성과…토종 과학자 노벨상 멀지 않아 = 중국은 특유의 인재 중시 과학기술정책을 통해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급속한 과학 발전을 이끌고 있다. 안화용 실장은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연구하면서 도출한 핵심단어는 첸쉐썬, 양탄일성(兩彈一星), 과학인재 중시”라고 소개했다.

첸 박사는 중국 항공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과학인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구애와 무한한 신뢰를 잘 보여준다. 초창기 우주계획으로 중국의 과학발전을 선도한 ‘양탄일성’ 전략도 첸 박사가 1956년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마오쩌둥과 독대한 직후 수립됐다. ‘핵탄(원자탄·수소탄)’과 ‘도탄(미사일)’, ‘위성(인공위성)’ 보유계획을 의미하는 양탄일성은 중국을 세계적인 과학강국으로 올려놓았다. 또한 미국에서 첸 박사를 데려와 성공한 이후, 중국은 국내외 우수한 중국인 과학자를 선정해 영입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하는‘백인계획’, ‘천인계획’, ‘만인계획’등을 세워 지금도 이를 시행하고 있다.

‘백인계획(百人計劃)’ 프로젝트는 중국의 인재중시 전략의 효시다. 1994년 중국과학원에서 처음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해외 고급인재를 유치해, 지역의 첨단기술산업과 신흥산업을 발전시키고 우수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백인계획에 따라 최종 선발된 과학 인재는 박사 학위를 소지한 평균 연령 36세의 젊은 연구원들이었다.

2008년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천인계획(千人計劃)’으로 인재중시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한다. 중국 공산당은 천인계획으로 해외 고급인재를 영입, 고국으로 귀국시켜서 혁신과 창업을 담당 하도록 했다. 천인계획 시행 후 해외인재의 귀국창업이 봇물을 이뤘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천인계획에 선정된 학자들에게는 막대한 혜택을 제공했다.

우선 중앙정부는 1인당 100만 위안(한화 1억70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보조금은 완전 면세 혜택을 받았다. 연구영역에 따라 5~7년간 최고 800만 위안을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더해 인재를 직접 채용한 기관이나 학교에서도 별도로 일정한 봉급과 연구비를 지급했다. 그 밖에 특별 의료 고려대상에 포함되며, 주택보조금과 부식비, 이사비용, 친척방문을 위한 귀국보조비, 자녀교육비까지 지원했다. 심지어 배우자의 취업까지 정부가 주선해 주면서 과학인재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2012년 7월 25일까지 7회에 걸쳐 시행된 천인계획을 통해 모두 2263명의 해외 고급인재들이 중국으로 돌아왔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이제 ‘만인계획’까지 내놓았다. 2012년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천명했으며 천인계획보다 더 광범위하게 시행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만인계획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10년간 인재를 3가지 등급으로 나눠 총 1만명의 우수 인재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선발된 우수 인재들에게 일인당 100만 위안 이하의 특별지원금을 지원하고 연구의 자율성도 보장한다. 지난 2013년에는 걸출인재 6명, 과학기술혁신인솔인재 72명, 청년우수인재 199명으로 총 277명의 첫 번째 명단이 발표됐다.

안 실장은 “중국은 자국 내에서 교육받은 토종 과학자 중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긴 하다. 하지만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중국에서 생산되는 SCI급 논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다, 백인계획, 천인계획, 만인계획으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사람 중심 투자 모형을 갖고 있어 기초과학분야에서 크게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기초과학 저력 바탕으로 막대한 인적네트워크 투자까지 = 일본은 2001년도에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50년 동안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천명했다.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기초과학을 지지하고 기초 연구자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밝힌 구체적인 목표는 “국제적으로도 평가가 높은 양질의 논문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국제적 과학상의 수상자를 미국과 유럽 주요국만큼 배출하는 것(50년 내에 노벨상 수상자 30명 정도), 뛰어난 외국인 연구자가 다수 모이는 연구거점을 상당수 만들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안 실장은 “당시 노벨상 수상자 수까지 목표로 내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 여론이 대두되면서, 제4기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 시에는 과학기술계 품위 손상을 우려해 ‘노벨상 수상자 숫자’ 목표를 삭제했다. 그러나 문구만 삭제했을 뿐 일본 과학계는 그 같은 목표를 향해 치밀하게 수행해 나갔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은 노벨상 후보자는 물론 수상자 선정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 과학계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 일본학술진흥회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스웨덴과의 과학기술협력, 일본 연구자의 연구성과 소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일본에서 '노벨상 100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했는데, 일본은 관례를 깨고 포럼에 참가한 세계 석학들의 경비를 전액 부담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안 실장은 “노벨상 후보자 추천은 기존 수상자들과 북유럽 과학자들, 세계적인 학회 회원들이 담당한다. 일본의 전략적인 인적 네트워크 구축은 최근의 잇단 노벨상 수상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과학자들에 대해 노벨 재단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최종 토너먼트에 올라온 후보자들은 사실 종이 한장 차이다. 2011년에 김필립교수가 아쉽게 노벨상을 놓쳤는데, 우리가 일본처럼 인적 네트워크만 제대로 구축이 됐더라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논란이 된 ‘노벨상 수상자 수’ 목표의 초과달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기본계획이 수립된 2001년도 이후 13년만에 과학분야 수상자가 13명이나 나왔으므로, 이러한 추이라면 목표로 설정한 2050년까지는 30명이 아니라 40명도 배출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 한국, 희망적... 그러나 ‘과학계의 박세리’가 절실해 = 우리로선 부럽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에 비해 기초과학의 역사가 워낙 짧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연구 성과가 10년 이상 검증된 후에야 수상자가 될 수 있는 노벨상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노벨상 후보자의 탄생도 희망적인 서곡이다. 일본은 노벨상 수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후보자가 있었으며, 48년을 기다린 끝에 1949년 첫 과학분야 노벨상수상자(유카와 히데키, 노벨물리학상)가 나왔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81년 동안 꾸준히 기초과학에 정진한 결과 1949년에야 비로소 노벨상이 나온 셈이다.

안 실장은 “일본은 81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유룡 교수님 한 분이 톰슨로이터사로부터 후보자로 거론됐다”며 “우리도 일본처럼 최소 48년 기다리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역사는 1980년 이후부터이므로 34년밖에 안 됐고, 일본처럼 81년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47년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조급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마냥 기다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안 실장은 “우선 일본처럼 탄탄한 기초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장인정신’을 갖고 한 우물을 파는 연구자를 용인해 주는 문화와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부는 현재 한국연구재단에 의뢰해 초장기 연구 지원 프로젝트인 ‘한우물파기 사업’에 대한 정책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입법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프로젝트 중심 연구지원도 문제다. 안 실장은 “우리나라는 돈 안 되는 연구를 지원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지원금이 과제 프로젝트 중심으로 나간다. 지금은 연구에만 몰두하는 성향의 교수보다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재주가 좋은 사람이 여러 국가사업을 중복 수주하는 경우가 흔하다. 질이 아닌 양적인 승부다. 연구과제 경쟁에서 서울대와 지방대가 게임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과제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지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 어느 대학에서건 의미 있는 연구를 열심히 파고드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을 선발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계열 우수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는 것도 넘어야할 산이다. 중국처럼 과학자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우를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안정적인 연구환경은 보장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실장은 “기초과학 분야는 국가차원에서 육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과학 연구자는 일단 취업이 잘 안 된다. 국가가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마련해주고 연구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과 같은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과학 전공자의 성공 롤모델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안 실장은 “기초과학 분야의 '박세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박세리가 처음 LPGA를 정복한 이후 지금은 소위 ‘박세리키즈’가 LPGA를 주름잡고 있지 않은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초과학 분야 연구 지식을 살려 벤처기업을 설립한 성공적인 CEO나 특허를 출원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연구자가 많이 나올수록, 젊은 과학자들이 기초과학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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