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현장 모르는 ‘톱-다운' 방식으론 ‘악순환’ 반복

[한국대학신문 차현아·신나리 기자] 산학협력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톱 다운(Top-down)’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에서 정책이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학현장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바텀 업(Bottom-up)' 방식을 통해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 실질적 주체들 간의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학관계자들은 정부 주도의 ‘Top-down' 정책의 대표적인 예로 인문사회·예체능 계열의 산학협력 정책을 꼽는다. 실제 대학 현장에서는 인문사회계열과 예체능 분야의 산학협력의 방향도 잡히지 않은 단계라고 꼬집는다. 정부는 '인문사회·예체능 계열의 산학협력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이를 적극 평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산학협력 10대 중점 추진과제’를 발표하며 인문사회·예체능분야의 산학협력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공대 위주이던 산학협력을 인문사회·예체능 까지 넓혀 산업체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인문학에 기반한 상상력에 첨단기술을 겸비한 융합인재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인문분야 대학생들에게 현장 중심의 지식과 숙달된 현장경험을 제공하도록 인문사회 계열형 실습 프로그램과 캡스톤 디자인 교과목을 신설하도록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인문사회·예체능분야는 산업체의 기반 자체가 약하고, 산업화 할 수 있는 학문자체의 수요도 적다는 지적이다. 또한 최근 대학 구조조정의 1순위가 인문사회 분야인데, 보호책 이전에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모양새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인문사회 계열 교수는 “모두가 알다시피 인문사회 학문은 위기아니냐. 당장 입학 정원을 감축하고 통폐합이 이뤄지는 과를 두고 산학협력 강조라니 당황스럽다”라며 “산학협력이 이뤄지려면 이 학과들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있던 과도 없어지는 현실에서 산학협력이 가당키나 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문사회·예체능분야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깊은 고민 없이 산학협력 활성화 정책에 끼워맞췄다는 비판도 있다. 산학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평가 정책이 이공계열에 유리한 지표들로 짜여있다는 주장이 그 중 하나다. 실제로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평가지표에서도 인문사회계열과 예체능 계열의 산학협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LINC사업 기본계획안에 의하면 핵심성과지표 중에서도 기술이전 계약건수 및 수입료, 기술사업화 실적 등 이공계에 맞춰진 산학협력 역량 지표를 두고 평가한다.

교육부의 포스트 LINC 사업으로 꼽히는 ‘코어(Core) 기술혁신형 겸 산학협력중개센터’ 역시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정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정책은 기술사업화 역량이 우수한 5개교를 선정해 산학협력 중개센터 운영을 병행하는 것이다. 중개센터로 선정된 대학은 대학의 혁신기술 상용화 성공 모델을 만들게 된다. 동시에 대학과 기업간 기술·교육 등 다양한 협력 수요를 효과적으로 매칭하는 권역·기능별 구심체가 돼 2단계 LINC 사업 성과를 확산한다.

문제는 중개센터의 주관이 ‘대학’이라는 점이다. 정책대로라면 중개센터에 각 대학 산학협력단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학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대학은 산학협력단의 역량을 비롯한 기초 정보를 중개센터에 제공할 수밖에 없다. 한 권역에서 산학협력을 두고 사실상 경쟁대학에 자교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셈이다.

지역의 한 사립대 산학협력단장은 “이 정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의심스럽다. 현장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한 대학의 주관으로 운영하는 중개센터에 다른 대학이 참여하기 얼마나 껄끄러운지 알 것”이라며 “지역별로 산학협력의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특정대학이 주관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산학협력단 관계자들은 현장의 상황을 반영한 ‘Bottom-up'방식으로 정책이 마련돼 현장과의 괴리감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표에 맞추기에 급급한 보여주기식 성과가 아닌 실질적인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산학협력 당사자들 간의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역할은 산학협력 주체들이 만날 수 있게만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배영찬 한양대 교수(화학공학)는 “정부가 산학협력 자체를 끌고 나가려 해서는 안 된다. 기술이 절실한 중소기업과 대학 간 연계 정도만 잘 해줘도 충분하다. 그게 할일 이다. 중소기업과 대학들이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쉽게 협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김우승 한국산학협력학회 회장(한양대 ERICA캠퍼스 산학협력단장)은 “결국 현장에서 산학협력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문화와 구조를 조성하고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을 잘 세워도 결국 현장에서 산학협력이 잘 돌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