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력 없고 구조적 모순 지적 안해 "선언으로 그친 한계"

대통령 청년위 3장 14조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언식 “예방인식 강화”
대학원생 “구조적 모순 지적 안해 인권침해 문제를 교수 일탈로 국한”

▲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는 29일 광화문 KT빌딩 1층 드림엔터에서 3장 14개조로 이뤄진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언했다. ⓒ이재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국내 대학원생의 45.5%는 언어폭력을 비롯해 신체적, 성적 폭력이나 차별, 사적노동, 저작권 편취 등 부당 처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절반을 넘는 대학원생은 불이익에 대한 우려와 해결에 대한 확신이 없어 이를 묵과했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는 29일 오전 광화문 KT빌딩 드림엔터에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권리장전 선언식을 개최했다. 청년위원회 측은 대학원생의 해묵은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현실적인 구속력이 없는 힘빠진 선언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권리장전은 3장 14개조로 구성됐다. 신체, 언어, 성적 폭력과 차별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 개인 존엄권을 비롯해 △전공과 연구주제에 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을 권리(학업 연구권) △구체적, 객관적 평가항목으로 심사받을 권리(공정심사) △학업과 사생활의 균형을 스스로결정할 권리(자기 결정권) △연구와 무관하거나 부당한 일을 거부할 권리(부당한 일 거부권) △조교 근로시 명확한 근로조건을 알 권리(조교 권리) △연구결고에 대한 기여도를 정당하게 인정받을 권리(저작권) 등이다.

이번 권리장전 선언은 대학원생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전국 33만명으로 추산되는 대학원생은 논문을 매개로 한 지도교수와의 사제관계에서 인권침해에 시달려 왔다.

청년위원회가 지난 6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대학원상 23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45.5%가 각종 부당처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부당처우 유형으로는 언어와 신체, 성적 폭력 등 개인 존엄권을 침해한 사례가 31.8%로 가장 높았고, 사생활의 자유나 사적노동과 관련된 자기 결정권 침해도 25.8%에 달했다. 물질적 대가를 요구하는 학업 연구권 침해(20.2%), 저작권 침해(9.5%) 등이 뒤를 이었다.

남성보다 여성(52%)이, 석사생보다 박사생(54%)이 많았고, 연구실이나 실험실에 소속된 경우(47%)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부당처우 경험이 많았다. 예체능 계열의 경우 2명 중 1명꼴(51%)로 부당처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한 자연계열 대학원생(여, 27)은 “학위과정에서 자르겠다고 잦은 협박을 하더니, 교수의 부인 이름을 공저자로 기재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한 공학계열 대학원생(남, 26)은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을 심하게 간섭하고 결혼할거라면 학업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신용한 청년위원회 위원장은 “대학원의 일부 불합리한 관행으로 이해 지적공동체의 구성원인 대학원생들이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권리장전이 선언에 그쳤고 참여주체가 각 대학의 총학생회라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박원익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인권선언으로의 의미는 있으나 실제 대학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해결할 구속력이 없고, 대학원생의 문제가 지도교수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은 29일 체결된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대학원생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와 문제 발생시 해결할 제도적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재 기자

고려대와 홍익대, 중앙대 등 일부 대학원 총학생회와 대학원생 10여명은 29일 청년위원회의 권리장전 선언식에 앞서 ‘온전한 대학원생 권리장전 및 대학원생 10대 요구안 실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효력이 있으려면 이에 따른 제도적인 통제가 있어야 한다. 특히 사립대가 많은 국내 고등교육 특성상 교육공공성을 밝히고 인정하는 선언이 돼야 하는데 이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리장전의 선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장전의 실효성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현재 권리장전은 대학원생의 신분과 지위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고 실제로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생의 인권침해 해결과 처우개선을 위한 10대 요구안을 주장했다. △대학원 학생회 법적 위상 보장 △대학원 입학금 폐지 및 수료연구등록금 상한제 도입 △대학원 등록금 인상규제 도입 △대학원생 대상 든든학자금대출(취업후학자금상환제도) 허용 △대학원생 연구노동자 생활임금 보장 △조교 표준 근무환경 보장 및 근로계약서 체결 △대학원 기숙사 수용률 제고 및 공공기숙사 확충 △대학 인권센터 설립 의무화 △시간강사 교원지위 회복 △대학구조조정 중단 및 대학비리 규탄 등이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중앙대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은 구조적으로 학문적인 성과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연구수주에 더 매몰돼 있고, 이 과정에서 대학원생은 지도교수의 영달을 위해 연구력을 착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향후 총학생회가 없는 대학원에 대한 연구환경실태조사에 힘을 쏟는다는 입장이다. 박원익 총학생회장은 “학생회가 없는 대학원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조차 어렵다.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학원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위원회 측은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선언식 이전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고 미리 밝혀왔다. 입장을 이해한다. 이번 선언은 대학원생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이해해달라”고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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