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주(본지 논설위원/고등직업교육평가인증원장(동양미래대학 교수)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제에 정답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 문제를 틀린 학생들만 1만 8000여명에 달하고 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은 소송비용으로 6600만원이나 지급했다고 한다. 하향지원한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재수를 하고 있는 피해 학생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이며 소송비용은 또 누가 변상할 것인가. 혹여 누군가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더라도 피해 학생들을 보상할 길은 난망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일이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교육부가‘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평가방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청회 이후,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추진 계획에 대해 관련 법률도 제정하기 전에 교육부가 평가지표(안)부터 발표한 절차상의 문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의 국회-교육부-대학 간 3자 협의체 구성 제안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문제, 공청회를 통해 개진한 일선대학의 의견이 대다수 반영되지 않은 문제, 대학을 5개 등급으로 서열화해 공개하겠다는데 따른 제반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 왔다. 전국대학교수노조는 “교육부의 일방적인 구조개혁 평가를 거부하며 폭력적인 구조조정을 막아내고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편승해 일부 대학 총학생회는 특정 언론사의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요컨대 대학순위평가가 정량화 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를 무분별하게 재단함으로써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데 대해 결연히 맞서겠다는 것이다.

대학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1주기 학생정원 감축 목표도 재정지원 특성화사업을 통해 거의 달성한 상황에서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급박한 일정으로 무리하게 추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속도전으로 급박하게 밀어붙이는 식의 대학구조개혁은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잡음만 양산할 공산이 크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오류 사태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 일선대학의 다양한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이해관계자들이 공감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첫째,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 목적으로 학생정원감축 이외에 교육의 질 제고를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 교육의 질 제고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고등교육법에 근거한 기관평가인증제와 각종 재정지원사업 평가를 통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가 평가를 통해 대학을 5개 등급으로 서열화해 공개해도 되는 일인가. 부작용은 없을까. 국민들이 동의하는 대학 서열을 제시할 수 있는 평가기준의 마련이 가능할까. 셋째, 대학은 물론 재학생, 졸업생들이 납득할 수 없는 대학의 서열이 공개됐을 경우에 대학 구성원들이 감당해야 할 피해를 보상할 방안이 있는가. 학벌주의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출신대학이 개개인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넷째, 교비 유용 및 횡령, 입시부정 등 탈·불법적, 비윤리적 경영 실태가 적발된 대학에 대한 구조개혁을 감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와 대학 서열화에 기초한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면, 과연 일선대학이나 국민 대다수로부터 객관성·공정성·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공청회에서 밝힌 평가지표의 규모나 내용으로 볼 때 약 340여개 대학을 불과 몇 개월 동안에 평가할 수 있겠는가. 또한 평가결과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구조개혁과 연관성이 깊은 지표만 엄선해 평가지표를 최소화,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구조개혁의 본질적 취지가 구현되려면 이해당사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합리적인 절차와 맞물릴 때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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