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매몰’ 교육이 ‘전공바보’ 만드는 시대 "안타깝다"

기업 ‘교양교육 무장 인재’에 대한 요구 증가
현상 꿰뚫는 안목과 통찰력은 교양교육의 몫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얼굴에 베인 주름.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온화한 미소.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을 처음 만난 날, 기자의 손에 그는 따끈따끈한 대전역 유명빵집의 ‘OO소보로’를 선뜻 건넸다. 일흔이 넘은 그이지만 한국교양기초교육원, 교양교육학회, 전국대학교양교육협의회에 대학 강의까지 한국의 대학교양교육 위상 제고를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든 종횡무진 누빈다. 그를 만난 것도 바로 그런 그의 교양교육에 대한 열의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한국 고등교육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그 동안 방치되고 소외됐던 교양교육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손 원장은 교양교육이 단순 상식의 확장, 취미생활 정보, 오락 등으로 타락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대학이 직업학교로 전락하고 있는 이상, 대학 수준은 점차 하향 평준화로 기울고, 결국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꼬집었다.

“교양교육에 대한 요구는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학생도 교수도, 학교 측은 물론 언론에서조차 대학에서 교양교육이 중요하고 그래서 교과과정에서 교양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만 교양교육을 강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학의 교양교육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세상이 바뀌었음’을 꼽았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는 물론 정보화 사회도 이미 지나갔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미 ‘메가트렌드’ 시대로 지식정보의 유통, 창출, 복사, 소비가 아주 자유로워졌고, 이에 따라 하나의 지식만을 가지고는 ‘전문가’가 될 수 는 없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어느 수준의 지식은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습득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 시대 대학은 여러 지식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인 ‘안목과 통찰력’을 길러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부분이 교양교육이 떠 맡아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젠 한 전공에 매몰돼서는 ‘전문가바보(Fachidiot)’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기업에서 ‘교양교육으로 무장한 인재’ 양성을 대학에 주문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손 원장은 한 대기업 CEO의 말을 들려줬다.

“전공에서 배우는 첨단 자연과학은 효용반감기가 점점 짧아지고, 입사하면 결국 업무에 맞는 전공분야를 다시 익혀야 합니다. 학생들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소설,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문학작품 등을 읽으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현재 기업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복합적인’ 원인으로부터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풀어내려면 단선적인 학습으로는 곤란하지요.”

기존의 직업교육과 교양교육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양교육을 잘 받는 것은 오히려 직업교육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교양교육은 직업교육과 전공교육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 내 교양교육 위상이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했다. 학부교육선도대학(ACE) 육성사업 선정 평가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0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교양과목에 대한 비중이 상당히 늘었다는 것이다.

2010년 교과과정 구성점수가 총 10점 만점이었을 때, 교양 교과과정 4점, 전공 교과과정 4점, 비교과 과목이 2점 배점이었다. 올해 ACE 사업 평가지표는 총 15점 만점에 교양 교과과목 교양 7점, 전공 5점, 비교과 3점으로 교양과목이 전공과목보다 평가 비중이 늘었다. 교양 교육과정이 전공 교육과정의 배점을 넘어섰다. 이는 대학교육과정에서 ‘교양교육’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증거다.

그가 원장으로 있는 한국교양기초교육원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 신청 대학에 교양교육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각 대학은 단장 1명과 전문위원 2명으로 구성된 컨설턴트가 학교를 방문,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다. 학교에서는 이를 참고해 개선할 부분에 이행 동의서를 총장명의로 제출하고 1년 뒤 교육원은 대학을 현장 방문해 개선사항을 확인한다. 컨설팅 비용은 교육원이 지원한다.

촌음을 아껴 온갖 방법을 통해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그에게 ‘시간과 비용’의 문제는 걸림돌이다.

“교양교육 컨설팅을 받고자 신청하는 대학은 의지가 있는 대학입니다. 신청하는 모든 대학을 방문해 컨설팅 하고 싶지만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하루빨리 제대로 된 교양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고는 있습니다.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