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신뢰와 원칙이 중요한 시험이다. 누구나 기꺼이 동의하는 룰을 바로 세워야 하며, 그 룰을 시행하는데 있어 수능당국은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60여만 수험생들의 대학입시가 이 한 시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의 중요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수능시험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생에 중요한 시험이라는 데는 누구든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엔 학생부와 대학별고사를 중심으로 입시를 치르는 수시모집을 통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아 수능을 보지 않고도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다만 그런 수시 지원자들조차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넘지 못해 다 붙은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수능은 중요하다. 이처럼 중요한 시험이 수험생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수능당국 스스로 원칙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수능의 역사를 돌아보면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들쭉날쭉한 난이도는 수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수능 20년의 역사는 그야말로 ‘불수능’과 ‘물수능’의 반복된 역사로 봐야 할 정도다. 1994학년도 첫 수능(1993년 시험실시)부터 올해 수능까지 영역별 난이도를 조절하지 못해 예기치 못한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 수능 시행 초기에는 사고력 중심의 출제방식을 채택하면서 대체로 어렵게 출제됐다. 그러다 2001학년도 당시 전체 평균 성적이 전년도보다 27.6점이라 뛰어오르고, 만점자(4개 영역 400점 만점)가 66명(인문계 24명, 자연계 42명)이나 쏟아지는 물수능 사태가 벌어졌다. 비난이 거세게 일었고 이듬해에는 다시 불수능으로 영역별 평균 점수를 인문계 기준으로 평균 17점 떨어뜨렸다. 원칙 없는 수능의 전형이다. 2007년 불수능을 계기로 수험생의 부담을 줄여한 한다는 명분아래 물수능 기조가 굳어지기 시작했지만 난이도의 등락폭은 여전히 크다.

그렇다고 물수능 일변도로 흐르는 것도 불신과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수험생의 불필요한 학습부담을 줄이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EBS 연계율을 70%로 유지하는 정책이나 영역별 만점자 1% 원칙, 쉬운 영어 원칙에는 공감하는 전문가 들이 많다. 그러나 변별력의 상실은 성실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모순을 낳고 있다. 이번 수능처럼 실수로 한 문제를 틀리면 2등급이 되는 시험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실력이 아닌 그날의 몸 상태와 운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실수가 점수를 좌우하는 시험은 어김없이 다음 학년도 재수와 반수를 양산한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수능이 당국의 기대처럼 사교육을 잡기는커녕, 사교육이 수능시장에서 논술과 비교과활동 분야로 팽창하는 풍선효과만 초래했을 뿐이다.

오류를 신속하게 인정하지 않는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도 수능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의 경우 지난해 미숙했던 대응을 반면교사 삼아 신속하게 오류를 인정하고 복수정답을 인정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수능당국은 세계지리 문제에 타당한 이의제기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귀를 닫고 채점을 강행했다. 결국 수험생들을 상대로 한 1년여의 소송 끝에 법원에 의해 수능 결과가 뒤집히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수능당국의 권위를 지키려다 일말의 신뢰마저 무너뜨린 꼴이었다.

정부가 지난 4일 발족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선위원회는 흔들리는 수능의 원칙을 굳건하게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한다. 우선 근본적이고 폭넓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해 수능에 따른 반발여론에 기대어 임시방편으로 정치적 개선책을 내놓아서는 영영 수능 혼란을 근절할 수 없게 된다. 벌써부터 수능을 없애버리자는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혼란에 대비한 단계적인 대책 없이 수능부터 없애 버리는 것은 더 큰 혼란을 부르는 꼴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높은 변별력을 요구하면서 어려운 출제를 주문하는 것도 물수능 후 불수능으로 점철된 역사를 반복하자는 근시안적이고 감정적인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혼란을 최소화 하면서 최소 10~20년 이상을 유지할 장기적인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수능개선위원회에 현장 교사는 한 명 뿐이고 대부분이 대학 교수들로 채워졌다. 이것이 또 다른 무원칙의 결정을 낳는 전주곡인 것만 같아 불안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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