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와 연구 병행 어려워 경력단절 심각

[한국대학신문 차현아 기자] 최근 사회적으로 출산과 육아 등으로 여성의 경력단절이 문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 내 여성 연구 인력의 경력단절 상황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최대 3년의 육아휴학과 영유아를 동반한 학생이 도서관에 방문해 대출 요청하면 직원이 책을 가져다주는 서비스 등 ‘모성보호’ 제도를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가에서는 여성 연구인력이 출산과 육아로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여성 연구인력의 경력단절 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11일 대학가에 따르면 결혼 후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학생’들은 연구활동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부모학생조합인 ‘맘인스누’의 조사결과 서울대 내 부모학생 중 88%가 출산과 육아로 연구경력 단절을 경험한다.

이들은 학내에서 연구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거나 수유하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학교 직영 어린이집이 두 개나 마련된 학교는 서울대가 유일하다. 서울대에는 부모학생이 약 2500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교내 어린이집이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킨다고 답변한 부모학생은 10%미만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대학은 보육시설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국 대학 중 보육시설 및 수유실을 갖추고 있는 대학이 몇 곳인지 통계자료조차 없다. 다만 이공계 단과대학 차원에서 보육시설 보유 여부를 확인한 통계자료는 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올해 기준 이공계 대학 내 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대학은 전체 277곳 중 45개교(16%)에 불과했다. 고려대에서는 최근 학내 구성원들의 모성보호를 위해 부속 어린이집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학 내 공간들은 아이를 동반한 부모학생들에게 배타적이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과 연구실, 실험실 등에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육아를 위한 별도의 공간도 마련돼있지 않은 상황이다. 대학 내 어떤 공간에서도 연구와 육아가 동시에 이뤄지기 힘들다. 결국 연구와 육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연구자의 전공에 따라서 부모학생의 경력단절 현상은 다소 차이가 있다. 대체로 실험실이라는 정해진 공간에 매여 있지 않은 인문계열 부모학생들의 경우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육아를 위한 시간을 다소 유동적으로 활용가능하다.

전공별로는 이공계열 부모학생들의 경력단절이 특히 두드러진다. 특히 이들은 실험실로 출퇴근하며 연구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공 특성 상 시간이 정해져있는 단기 실험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해 논문을 써내야 할 일도 많다. 이 때문에 이들은 시공간 상 아이와 분리될 수밖에 없다. 출산과 육아로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하면 논문을 쓰지 못하거나 팀 프로젝트에서 점차 배제된다. 이는 곧 경력단절로 이어진다.

다만 이공계열의 경우 ‘이공계여성 연구복귀 지원사업’ 등 국가 차원에서 경력단절을 막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2002년부터 ‘과학기술기본법’에 여성과학기술자의 활용문제를 포함시켰다. 이후 2004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 등을 통해 경력단절 이공계 여성연구인력들을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제도적 방침들이 마련됐다. 여성과학기술인 유관기관에서는 기업과 연구기관 등과 경력단절 여성연구인력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학생을 바라보는 학계의 경직된 시선은 출산과 육아를 연구와 병행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디자인전공 박사과정의 모 대학원생은 “유능한 연구자로서 학계에 남으려면 애엄마라는 사실은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다. 담당 교수도 박사과정 다 마치고 임신하라고 권유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은 연구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라도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정원 서울대 맘인스누 대표는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연구공간을 따로 마련해줘야 여성연구인력의 경력단절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대학 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생인 김춘지씨는 “사회 분위기는 점차 여성 경력단절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갖는 추세지만 학교 분위기는 아직 보수적이다. 학교 내에서 부모학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제의식을 공감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내 여성 연구자들은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다. 대학들이 먼저 학내 보육시설을 마련해 아이 양육과 연구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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