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영유아 무상보육을 위한 ‘누리과정’ 예산이 기나긴 논란 끝에 확정됐다. 예산 5064억 원을 지방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한 재원으로 우선 편성하되, 지방 교육재정 부족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업 예산을 국비로 우회 지원하는 방식이다.

정부에서는 박근혜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을 국고로 투입하는 대신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에 따라 각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교육감들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을 편성할 경우 다른 초·중등 교육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며 발만 동동 굴렀다. 국회 교문위 야당에서도 ‘절대불가’를 외치며 배수진을 쳤지만, 결국 국가의 책임을 덜고 당장 누리과정을 정상화 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됐다.

일부 교육청에서는 3개월치, 7개월치의 누리과정 예산을 배정하며 수용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매년 반복될 미봉책’이라며 대통령 공약 정책인 만큼 국가의 책임을 다 하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내년도 고등교육 예산 역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바로 기성회비 예산이다. 대법원 판결이 내년 초에 예정돼 상황은 시한폭탄처럼 조여 오는데, 현장과 야당에서는 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정부와 여당은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재정회계법(민병주 새누리당 의원 발의) 통과를 은연중에 압박하고 있다.

고등법원 1심과 2심에서 ‘기성회비 징수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환 소송을 제기한 학생·졸업생들의 손을 연달아 들어주자, 야당에서는 ‘국립대학 재정은 본래 국가의 책임이며, 그 동안 학생과 학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해왔다’며 각각 특례법과 국립대학법을 발의해 맞서왔다.

그러자 교육부는 기성회비분의 1조3142억 원을 수업료로 전환해 내년도 세입으로 편성했다. 대신 국립대 실험실습 안전 환경 구축 예산을 1500억 원을 배정했고, 국립대 시설 확충비를 대폭 늘렸다.

여기에는 나름의 논리와 시나리오가 있다. 기성회비분을 수업료로 전환해 정부의 예산 부담을 줄이고, 대신 기성회비 문제 해결과 함께 학생·학부모의 부담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야당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등록금을 10%가량 인하할 수 있는 1500억원의 예산을 우회지원한다는 구상이다.

한 교육부 간부는 “물론 등록금은 각 국립대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면서도 “1500억 원의 예산을 끌어오는 데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대학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등록금 동결·인하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성회비 관련 법안이 끝내 통과되지 않은 채 대법원에서도 패소할 경우, 교육부는 법령상 아무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각 국립대는 기성회비 파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감들처럼 눈 질끈 감고 재정회계법 통과와 등록금 인하에 힘을 실어주게 될지 모른다. 1500억 원의 실험실습 안전 환경 구축 예산이 등록금 인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까지 재정회계법에 힘을 실었던 국립대 총장들까지 정부책임을 강화하는 ‘기성회회계 대체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정부를 바라보는 국립대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교육부는 영·유아보육과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반복된 미봉책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교육부는 더이상 말로만 ‘교육은 백년대계’라며 ‘구조개혁’ ‘등록금 부담 완화’ 등 대학의 책무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손가락으로 무너지는 댐을 막으려 하지 말고, 정부 역시 그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펴나가는 주요정책마다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