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 청년위 "국내 대학원생 44.5% 인권침해 경험"
대학원생 인권침해는 구조적 원인 … 인권센터 설립해야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대학원 내에서 지도교수와 마찰을 빚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 강원대 등에서 지도교수에 의한 성폭력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 11월초 A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박모(38)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의정부경찰서에 따르면 박씨는 5일 오후 4시 30분경 의정부 호원동 소재 한 아파트 16층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졌다. 사망 당시 그의 몸에서는 ‘자살하겠다’는 내용의 짧은 유서와 신분증만 발견됐다.

가족과 지인에 따르면 그는 논문주제와 연구방법론 등을 두고 지도교수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대학원 동창 김모(49)씨는 “당초 논문주제와 방법론이 크게 수정돼 이유를 물었더니 지도교수의 일방적인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인들은 평소 쾌활한 성격이었으나 지도교수와 면담을 한 뒤에는 크게 격양돼 화를 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자살 이틀전인 11월 3일 모친 허모(62)씨와 전화통화를 하며 “논문을 작성하다 죽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자살하던 당일 지도교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해당 지도교수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이미 국내 대학원생에 대한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대학원생 중 44.5%가 인격침해나 사적노동 등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 물질적 대가를 요구하는 학업 연구권 침해와 저작권 침해 등도 발생했다. 특히 박사과정생은 석사과정에 비해 더 많은 인권침해에 노출됐다.

대학원생에 대한 인권침해가 빈번하는 것은 논문을 작성할 때 대학원생이 ‘을’이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고 심사받는 구조만으로 이미 갑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일부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압력에 의해 학술지에 거짓논문을 싣는 등 비리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세종대 모 교수는 “논문작성 과정에서 대학원생은 지도교수에게 사실상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이때 보이지 않는 폭력이 무수히 발생해도 학위를 받기 위해 대부분 쉬쉬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대학원생 인권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역시 각 대학에 인권센터 설립 등을 촉구하는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지난 10월 선포했다. 그러나 이 역시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으로 대학원생의 권익과 인권을 보호할 방법은 사실상 학교 내규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박원익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대학원생에 대한 인권침해는 지도교수 개인의 일탈이 아닌 논문작성 등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다. 이를 해결할 제도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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