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원(본지 논설위원/인제대 교수/한국대학평가원장)

매년 새해가 되면 한 번쯤은 새로운 각오와 함께 비전과 소망을 담아 본다. 2015년은 을미년 청양(靑羊)의 해다. 양(羊)의 속성은 羊의 모습을 본뜬 한자어인 선(善), 미(美), 의(義)에서도 알 수 있듯, 착함․아름다움․의로움을 상징한다. 양은 젖과 털, 고기 등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유익한 동물로 성서에도 가장 많이 등장한다. 양은 그 특성이 온유하고 착하나 한편으로는 보는 이에 따라 미련하고 우둔하게도 보인다. 자신의 털을 깎을 때에도 “잘 깎아 주실 거죠” 하고 그저 바라만 본다. 심지어 생명을 다할 때조차도 별 저항 없이 한순간에 “안녕” 하고 순순히 떠나간다. 천 길 낭떠러지가 바로 코앞에 있어도 오직 무리만을 좇아 “함께 가요” 하고 의심 없이 따라가는 것이 양의 본성이다. 그러기에 양의 생존과 삶의 질은 어떤 목자(牧者)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양과 목자를 비유한 정약용의 목민심서나 아흔아홉 마리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비유 등과 같이 성서에서도 볼 수 있듯, 양에게 있어 목자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학 중에도 목원(牧園)이라는 대학 명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양과 목자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양과 목자의 관계를 오늘의 우리나라 대학 현실 속에서도 들여다볼 수도 있다. 대학은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곳이다. 지성의 전당으로서 자유로이 풀을 뜯고 노니는 그 양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조차 특별히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일부 고등교육정책을 바라보며, 대학이라는 양들을 이끄는 목자로서의 정부와 교육부의 역할이 정말로 선한 목자로서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를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정부는 특히 ‘국민의 행복과 소통’을 중시하는 국정운영 방향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철학이야말로 선한 목자가 양을 배려하고 돌보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기본적으로 배어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학이 체감하고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 정부와 교육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고등교육정책 중 대학구조개혁평가 정책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무엇을 지향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방향성마저 혼란스럽게 한다.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아무래도 방법론이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길 잃은 양과 도벽이 있는 양, 거짓말 잘하고 싸움 잘하는 양이 더러 있다고 해서 위임받은 목자가 공권력이라는 이름하에 대다수 양들의 자율을 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

온순하면서도 어리석은 양을 이끄는 목자의 양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이끄는 방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선한 목자 혹은 악한 목자, 현명한 목자 혹은 어리석은 목자가 될 수 있다. 을미년 새해에는 특별히 양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해주기를 기대한다. 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꼼꼼히 살펴주는 현명하고도 선한 목자가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순한 양들이 정말 미쳐 버리지 않도록.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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