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지난 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총회를 갖고 황우여 부총리에게 86개의 대학규제개혁 과제를 정리한 백서를 전달했다.

지난해 대교협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대학재정·회계 △교육여건/시설 △교직원 등 8개 분야의 사안으로, 이중 절반이 대학재정이나 회계, 교육여건 관련 현안에 쏠렸다. 구조개혁 정국에서 대학들이 기본적인 운영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서에 실린 구체적인 규제 내용과 개혁방향을 살펴보면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회계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법인회계와 학교회계의 구분을 없애고 학교회계와 수익사업회계로 나누자는 제안은 설립자·오너 총장 체제가 남아있는 현 상황에서 사학에 대한 투명성을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현실적으로 법인의 재정상황이 어려우니 사학연금 법인부담금을 교비회계에서, 퇴직수당을 국가가 부담해달라는 요구는 책임 회피라는 오해를 사게 될 수도 있다.

예결산을 학생이 30% 이상 들어오는 등록금심의위원회가 아닌 평의원회에서 심사·의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항목은 이 백서가 지극히 교직원과 학생 등 다른 구성원을 배제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대학가 ‘갑을문제’가 이슈화 되는 상황에서 교직원 채용과 해고, 업무 겸직이 쉬워지도록 관련 규정과 평가기준을 완화하고, 강사 채용시 최소 계약기간을 대학이 설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대목은 대학이 아닌 기업의 단면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고액 등록금에 비해 교육의 질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평가, 사학비리와 비정규직 문제, 대학내 고착화된 권력구조, 구조개혁 정국과 맞물리면서 개별 대학에서 학문단위 통폐합과 정원조정 드라이브를 거는 등 대학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상태다. 여론은 정부와 언론보다는 대학의 책임을 더 크게 묻는 것이 현실이다.

대다수 대학들이 기본적인 생존경쟁을 직면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여론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학사회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대학 공공성보다 개별대학의 손익을 고려한 요구는 ‘상아탑’의 빛만 바라게 할 뿐이다. 헌법에 보장된 자율성을 인정해달라는 요구 역시 철학이 아닌 ‘손익계산’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대학들이 보다 솔선수범하고, 보다 구성원들을 보듬어 다시 사회의 지성으로 설 수는 없을까. 대학들이 반성·자정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공공적 책무를 제대로 해내야만 비로소 대학은 제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만 고등교육 정책 규제완화 등 의제를 당당하게 선도할 수 있고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슬로건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