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인류 역사에서는 20세기까지의 원칙과 질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 했다. 더 이상 약육강식과 획일적 집단주의의 원칙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닐 수 있다는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 예로,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소련이 패배하고, 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초강대국이 약소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역사적 현실의 의미를 간파하지 못 한 채 여전히 20세기강대국 중심 논리로 국제관계를 밀어붙이던 미국은 21세기 벽두(2001)에 9.11사태를 맞았다. 국가도 아닌 일개 테러조직에게 유일 초강대국이 당한 것이다.

보잘것없는 하찮은 존재들하고도 소통공존하지 않을 수 없는 21세기의 새로운 역사 계절에 인류가 이미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나는 해석한다.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 왔음을 알고 매화 봉오리 하나가 피는 것을 보고 천하의 봄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자연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공유하는 삶의 지혜이지만 일부 사람들 중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굳이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감지하고서도 스스로 변하려하지 않는 집단은 기득권 집단이기가 쉽다. 기득권이 클수록, 그 역사가 길수록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군대, 관료, 기업, 학교라고 하는 근대국가의 네 기둥들 중 그러면 어떤 기둥이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을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업일 것이다. 나머지 셋 중에서는 어떨까? 나의 전공영역이기에 자신을 갖고 말한다면 학교야말로 가장 변화에 저항적인 기둥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계는 지난 반세기동안의 교육체제에 뿌리 내리고 자라 온 거대한 기득권 세력들(정권, 관료, 교사, 교육학자, 학원, 학교경영자, 출판사, 학부모 등등)의 장악 아래 놓여있는 실정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역대 정권들의 되풀이되는 교육개혁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교육기득권의 세력 확장에만 골몰해 온 셈이다. 교육개혁이 되풀이되면 될수록 교육의 자율성은 축소되고 교육에 대한 국가통제는 점점 더 정교한 솜씨로 확대 강회 되어왔다. 각 급 학교의 학생선발권은 점점 더 국가독점체제로 귀속되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교육권, 학교운영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학입학예비고사,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내신제도, 졸업정원, 입학정원 등등 역대정권의 대학 진학과 관련되는 그럴듯한 장치들은 바로 국가독점교육체제의 정점의 모습들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을 개혁하자는 구호만 내 세우면 누구나 무조건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의 일원론적 전체주의적 교육체제를 해체하여 다양한 학교들이 자율적으로 공생공존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교육제도로 새 판을 짜자고 한다면 거의 모든 이가 반대할 것이다. 첫째는 거의 모든 어른 세대가 지금의 교육체제하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새로운 교육경쟁체제가 두렵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육체제하에서 기득권도 선택권도 없는, 그래서 일방적으로 희생만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약자 집단은 바로 청소년 세대, 학생집단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작 교육의 수요자이고 교육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아무런 발언권도 기득권도 못 갖지만 나머지 모든 기성집단들은 온갖 종류의 교육관련 기득권들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 김인회 교수는....
연세대 교육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1969년 이화여대에 부임했고 1980년 연세대로 자리를 옮겨 2003년 정년퇴임했다. 한국교육사학회 회장, 연세대 박물관장, 한국교육철학회 회장, KBS객원해설위원,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 이사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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