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대학들, HK교수 전임교원 전환에 부담 느껴

HK교수 대거 포함한 학과 개설 등으로 사업 취지 훼손 우려도

[한국대학신문 이재익·이재 기자] 인문학연구소에 최대 15억원씩 10년간 지원해온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이 종료를 코앞에 뒀다. HK사업은 인문학연구소와 인문학 학문후속세대의 안정을 위해 지난 2007년 시작된 사업으로 2012년까지 2131억원을 지원한 대형사업이다. 2007년 처음 선정된 HK연구소들의 사업종료가 2017년으로 목전에 오자 HK연구소와 대학들의 관심은 HK후속사업으로 쏠리고 있다.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가 ‘포스트 HK’사업을 언급하며 불을 지폈다. 문화융성위는 지난해 8월 청와대에서 제4차 회의를 개최해 2단계 인문한국사업을 추진, 소규모 인문학 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고 인문학 분야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장학지원도 강화한다는 방침을 논의한 바 있다.

■‘포스트HK' 연구소 중점 인문학 새 틀짜기= 주무기관인 한국연구재단도 후속사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문학 연구가 위축되고 대학구조조정 등 격랑에 휩싸인 대학가에서 연구소를 기반으로한 인문학 연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43개 HK연구소 모임인 HK연구소협의회(HK협의회)와 검색포털 네이버가 콘텐츠 제공에 관한 협력을 시작하는 등 인문학의 대중적 확산에도 연구소 중심의 인문학 연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HK협의회 관계자는 “대중적 인문학의 부흥과 학문적 인문학의 위축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연구소 중심의 전문적인 연구구조가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관심은 후속사업의 모형이 어떤 것이냐로 모인다. 중론은 컨소시엄 구성이다. 일부 HK연구소장들은 중·대규모 연구주제를 기반으로 한 연구소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했다. 한 HK연구소장은 “지역학 연구를 주제로 정치와 경제, 사회, 문학, 역사 등의 다양한 분야의 연구소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원받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국가규모의 대형 연구프로젝트를 가동할 수 있어 한 주제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연구가 가능하다.

이같은 모형의 기존 연구소 지원과 함께 개별 신규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0년간 장기지원을 받은 43개 연구소가 2기 사업의 수혜까지 독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한 HK교수는 “1기 HK연구소들이 독식해서는 안되며 내부 경쟁을 통해 포스트 HK사업으로 안착하도록 하고 예산을 나눠 새롭게 HK사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다른 연구소들에)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재단 측은 "HK사업이 국내 인문학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보고 이를 선순환시키고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에 걸맞는 인문학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포스트 HK사업을 열린 자세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HK교수 강의시키고 대학원 개설 ‘꼼수’= 관건은 성과다. 10년 장기지원사업이었던 만큼 기존 HK사업이 상당한 성과를 입증하지 않는 한 정치권과 여론을 설득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연구재단은 기존 3단계 평가를 활용해 HK사업을 진단하고 성과를 부각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HK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는 인문학 학문후속세대의 안정이다. 연구재단은 HK사업을 수주한 대학과 협약을 맺으면서 HK교수에 대한 10년간의 국고지원이 종료되는 시점부터 대학이 HK교수에 대한 인건비 전액을 부담할 것을 확약했다. ‘연구소 소속 전임교원 제도’를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현재 연구재단은 사업계획서 등을 점검한 결과 참여한 대학 22곳 모두 제도적인 틀을 완비하거나 사업종료까지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달랐다. HK교수들은 처우불안을 호소했다. 최대 10명에 달하는 HK교수를 대학이 재정을 전담하는 연구소 소속 전임교원으로 전환하는 데 대학본부가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부 대학은 이미 임용과 처우를 두고 연구소와 HK교수간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 소재 A대학의 HK연구소는 지난해부터 형사고발에 이은 민사소송에 휘말려 있다. HK교수 B씨는 지난해 재임용 심사에서 소장의 허가 없이 타 대학에서 강의했다는 사유로 탈락했다. B교수는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재임용에 탈락했다. 일반적인 전임교원이라면 해촉에 해당하지 않는 사유이며, 허가 역시 (구두로)충분히 소장과 연구소에 고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재임용 탈락이 인건비를 줄이고자 한 대학 측의 횡포이며 평소 연구소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데 대한 괘씸죄로 해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HK교수를 ‘활용법'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규모 사립대인 C대학은 HK교수가 대학의 전임교원으로 신분이 전환될 때 신분승계를 위한 조건으로 ‘연구비 수주’를 내걸었다. 연구비를 벌어오는 만큼 연구성과로 인정해 승계심사 시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HK교수는 인건비를 직접 벌어오라는 의미다.

수도권 D사립대는 HK교수를 주축으로 대학원 과정을 설치했다. 이 과정의 소개 홈페이지를 보면 HK연구소 구성원이 소속교수진으로 포함돼 있다. 연구가 중심인 HK교수의 대학강의를 제한하거나 최소화(3~6학점)하는 것은 사업의 원 취지가 췌손될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셈이다. 이들 대학은 사실상 시간강사료 등을 절감하고 학생을 모집해 수익을 내는 등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처럼 대학들이 HK교수 활용에 몰두하는 것은 전환 시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HK교수 E씨는 “대형 연구소는 교수 1인당 국비지원이 1억 5000만원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대학재정으로 옮겨가면 10억이 넘는 액수를 부담해야 한다. 대학으로서도 솔직히 부담스러운 부분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후속사업 논의 HK교수 대학승계가 좌우= 그러나 HK교수의 승계가 없이는 포스트HK도 장담할 수 없다. 한 HK연구소장은 “사업의 기본적인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한 채 후속사업을 하겠다는 데 누가 공감하겠나. 연구소 소속 전담교수 제도는 후속사업을 위한 필수과제”라고 말했다.

HK사업협약에 따르면 HK교수 승계를 거부할 경우 연구비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150억원에 달하는 인건비를 비롯한 사업비 전액이다. 대학 재정을 일시에 휘청거리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재단 측은 진통을 감안해도 승계를 거부할 대학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연구소 소속 전임교원 제도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관건은 이들이 기존의 학과체제에 어떻게 융합하느냐다. 강의를 하지 않고 연구만 전담하는 교수라는 새로운 개념의 제도를 정착시키기에는 10년도 부족했다”고 자평했다.

이 때문에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라도 포스트HK사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진 연구재단 인문학 단장은 “학문적 인문학은 위축되고 대중적 인문학은 부흥하는 시기다. 이를 뒷받침할 연구인력의 양성과 안정을 위해서 연구소 소속 전임교원 제도의 정착이 필요하다. 포스트HK사업을 통해 이를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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