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본지 논설위원/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철학자 김재인 박사는 지난해 12월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번역 출간했다. 프랑스어 원서 500쪽, 한글번역본 7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번역하는 데 10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인문서로는 근래 보기 드물게 2000부를 찍었다. 출판시장의 극심한 불황으로 인문서가 500부 단위로 출간되는 상황에서 ‘이례적’이다. 출판을 맡은 곳은 인세도 제때 잘 주고 계약도 부당하지 않다. 말하자면 한국 인문 출판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안티 오이디푸스’ 번역본은 출판된 셈이다. 그러나 10년 세월을 바친 번역자에 대한 대우는 허술하다. 정가 3만3000원에 세금 공제 전 금액으로 인세 330만 원을 받는다. 즉 10년에 330만 원을 번 것이다. 언어 능력은 물론이고 해당 분야에 대한 고도의 학문적 역량을 지닌 최고 수준 전문가의 10년 노고에 대한 대가가, 중소기업 대졸 신입의 두 달 치 월급에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누가 봐도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학계에선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해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연구재단과 대학 업적 평가에서 번역은 점수가 아예 없다. 이 점은 한국 대학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학자들이 유학했던 미국이나 유럽 대학의 상황과 크게 다르다. 동양철학자 김용옥 교수는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하버드대의 경우 동양학 관계의 박사학위 논문의 반 이상이 번역으로 점유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그들을 배운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배운 태도가 훨씬 더 철저하고 치밀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번역이야말로 외국학 연구에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할 기초공사다.

독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튀빙엔대 한국학과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 백승종의 말은 김용옥의 지적과 일치한다. 독일 대학에서도 한국학 전공 석사·박사 학위논문의 절반 이상은 번역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철저한 역주와 해제가 곁들여진 ‘연구번역’이다. 실제로 최제우(崔濟愚)의 ‘안심가(安心歌)’, ‘고려사실록’의 ‘성황당신앙(城隍堂信仰) 관련 부분’에 대한 연구번역으로 석사학위 논문이, 김인후(金麟厚)의 ‘백련초해(百聯抄解)’ 연구번역으로 박사학위 논문이 작성됐다. 이는 프랑스도 다르지 않다.

미국과 유럽에서 외국학 전공의 석사·박사학위논문 절반 이상이 번역으로 점유되고 있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해야 할까. 그들에게 동양학이 외국학이듯, 우리에게는 서양학이 외국학이다. 그들이 동양 연구를 번역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서양 연구를 번역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들이 외래문명을 자국어로 번역해 자국의 지식과 정보를 확충하고 있듯이, 우리 또한 세계의 지식을 우리의 모국어로 번역해 축적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스 신화의 거인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테라의 아들이다. 그는 자신의 발이 어머니인 대지에 닿아 있는 한 문자 그대로 천하무적이었다. 헤라클레스가 그와 대결하게 되었을 때 헤라클레스는 꾀를 내어 안타이오스를 번쩍 들어 공중에서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발이 땅에서 떨어진 안타이오스는 이미 통나무같이 무력한 존재였다. 비유하자면 서구의 동양학 연구는 자신의 대지에 발을 딛고 있고, 우리의 외국학 연구는 발이 땅에서 들려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라고 말은 요란하지만, 우리 모국어의 콘텐츠는 서양과 비교해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를 개선할 의지마저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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