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존 위해 '수퍼을(乙)' 된 대학 총장들.."분노조차 사치"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대학가에 이번엔 정부 행정기관의 갑질논란이 일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2015년도 창업선도대학 선정 심사를 위해 총장 등 대학관계자들을 불러놓고 취업준비생 다루듯 박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대학총장이나 부총장이 직접 심사에 참여했던 대학의 경우 중기청의 이같은 부적절한 처사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 14개 4년제 대학 관계자들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창업선도대학 최종심사를 받기위해 21일 대전의 한 호텔에 모였다. 창업선도대학 육성 사업은 중기청이 각 대학에 연간 20억원을 지원하는 대형 재정지원사업이다. 중기청은 최종심사에 올라온 14개 대학 가운데 7개 대학을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때문에 이날 여러 대학 총장들이 사업선정에 힘을 보태고자 직접 참석했다.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으로 진행된 이날 최종심사에 참여했던 한 대학관계자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대학총장을 입사 면접을 보러온 취업준비생을 다루 듯 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대기실에서 나와 면접실에 들어가니 심사위원 7명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 의자 5개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탁자도 없었다. 각 대학총장은 그 중 하나의 의자에 심사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앉아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발표자의 사업설명이 끝나면 심사위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발표 내용이나 서류가 미흡하거나 설명이 부족하면 압박면접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또 다른 대학관계자는 "대학의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총장님은 별로 개의치 않아하셨지만, 면접온 취업준비생처럼 앉아계신 총장님을 보며 모시고간 우리들은 민망하고 서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기청이 이번 사업을 처음하는 것이 아니다. 이날 많은 총장들이 참석할 것을 몰랐다고 할 순 없을 것"이라며 "탁자 놓고 물컵 하나만 가져다두었더라도 그렇게 자괴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대학총장에 대한 정부와 공기관의 푸대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2일 열린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총회에는 교육부를 대표해 실장급 인사가 참석했다. 앞서 전국 4년제 대학 최대 단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취입식에도 장관이 아닌 차관이 다녀갔다. 지난해 3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년 만에 청와대에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161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는데, 한 시간 반 가량 진행된 간담회가 끝난 뒤 대통령은 총장들과 눈인사는 물론, 악수도 없이 퇴장했다.

한 지방대학 총장은 "공무원들이 대학총장을 대하길 민원인들 대하듯 하는데도 학교를 짊어진 책임때문에 어디가서 불평도 못하고 속으로만 비애를 곱씹는다"며 "힘깨나 쓰는 서울지역 총장이나 한마디 하지, 지방대학 총장들은 불평도 사치"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지성의 중심이 대학이라고 한다면, 총장은 우리나라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총장을 무시하면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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