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이 큰 화두다. 갑질은 권력의 상하관계를 일컫는 ‘갑을관계’에서 나온 말로, ‘갑’에 어떤 행동이 이뤄짐을 뜻하는 접미사 ‘질’을 붙여 만든 신조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말한다고 사전은 적고 있다.

대표적으로 ‘땅콩 회항’ 사태부터 아르바이트생의 무릎을 꿇린 백화점 모녀, 20대 청년 노동자들을 저임금에 착취하려는 ‘열정페이’와 비정규직 문제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병폐처럼 숨어있던 '갑질'과 ‘을의 설움’은 최근 수면위로 올라와 여론의 심판을 받고 있다.

대학 사회에도 갑과 을이 존재한다. 비정규 교직원, 학생, 대학원생, 조교, 심지어 수험생까지. 이들은 을이다. 대학본부와 사학법인, 정규 교원들은 대학 사회에서 갑이다. 교직원의 채용,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학생들의 성적과 미래를 결정지을 다양한 기회에 대한 부여권한도 쥐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갑질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연이어 불거진 교수들의 막말·성추행 논란과 비정규직 문제부터 약화된 교수회와 힘잃은 학생회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대학 사회에서 갑인 대학들은 다시 정부 앞에선 '을'이 된다. 대학구조개혁법이 통과될 경우 정부가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 폐쇄까지 명령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고 있고, 반값 등록금 여론 속에서 정부의 재정지원, 즉 ‘돈줄’까지 쥐고 있어 대학들은 정부 앞에선 그저 '을'이다.

단적으로 대학들은 수년간 대학 등록금을 인하 또는 동결하고도 올해 또 동결을 결정했다. 대통령과 사회부총리까지 나서서 등록금 인상을 자제시켰기 때문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서울 유명 사립대들 역시 어느해보다도 일찍 등록금 인하·동결을 선언했다.

정부의 구조개혁이나 재정지원사업까지도 어차피 정원감축이 목표였던 만큼 대학들은 정원도 대폭 줄였다. 대학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또 재정지원제한 조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교육부는 올해에도 산업수요에 따라 이공계는 늘리고 인문사회 예체능 분야와 사범대학을 줄인 대학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는 ‘정원조정선도대학사업’을 준비 중이다.

국공립대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국립대의 총장직선제 폐지를 유도해놓고도 연이은 총장후보자에 대한 ‘묻지마’식 임용제청 거부로 '대학 길들이기'나 '입맛에 맞는 총장 고르기'로 비춰지고 있다. 공주대와 한국방송통신대, 경북대에서는 법적대응을 통해 이에 반발했고 법원은 대학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도 교육부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성회비 문제에 있어서도 국공립대는 '을'이다. 기성회비 반환소송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막대한 금전적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교육부는 책임이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어느 정도 등록금 인하 효과가 있어야 재정회계법을 통과시켜줄 수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교육부는 국립대에 대한 전체 지원예산이 아니라 기성회비 상당의 세입예산을 짰다. 국립대에는 실험실습안전환경 구축비 1606억원을 제시하면서 등록금 인하를 유도했고, 결국 국공립대 총장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한번 ‘올해 등록금 동결 또는 인하’를 공동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정부의 갑질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은 결국 대학사회의 '을'인 비정규 교직원과 학생, 대학원생, 조교들이다. 대학이 정부의 각종 평가에 대응해 학과통폐합을 단행하느라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포기해야 하고, 강사법 시행이 예고되자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했다. 구조개혁평가 지표 1점에 성적제도 등 학칙까지 무리하게 뜯어고쳤고, 장기간 총장의 공백은 대학의 발전적인 운영을 가로막고 있다. 과도기적 진통이라기에는 이 ‘을’들의 좌절과 후유증이 결코 만만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 금융, 교육, 공공기관 등 4대 개혁을 강조했고, 그 중에서도 ‘교육 개혁’을 핵심과제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례적으로 “대학평가 방식에 따라 대학이 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될 것”이라며 과감한 쇄신을 주문했다.

정부의 새해 교육개혁 목표는 ‘인성을 갖춘 창의 인재 양성’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갑을관계의 대물림이 과연 국가가 원하는, 사회와 국가 발전에 봉사할 수 있는 창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정부는 교육개혁 드라이브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불가피하다며 불이익을 감수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대학사회의 '을'을 위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오늘날 20년 전 5.31교육개혁의 공과를 따지는 것처럼, 후세대로부터의 평가 앞에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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