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할 시간에 정당한 대가 받고 일했으면 … 나는 '호구'였다"

#.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A씨(24)는 지난해 전공교수의 권유에 따라 미술관에서 인턴으로 2개월간 근무했다. 실무를 배운다는 부푼 꿈은 첫날 무너졌다. 무급인턴으로 식대만 간신히 제공받은 A씨는 2개월 동안 온갖 허드렛일만 담당했다. 큐레이팅 교육은 없었고 인턴 담당직원도 2개월 사이 한차례 교체됐다. 정직원들과 다른 대기실에서 함께 일을 시작한 동기와 함께 내내 청소만 했다. A씨는 “배우는 것 없이 자원봉사하러 온 격이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고 말했다.

#. 영화제 사무국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B씨는 한달에 40만원을 받고 일했다. 모집공고상의 임금란에는 ‘사후협의’라고 적혀 있었다. 인턴으로 채용돼 홍보팀에서 일했다. 사수가 배정됐지만 홍보팀 경험이 없는 기획팀 출신 직원이었다. 영화는 물론 홍보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한 채 인턴기간이 종료됐다. B씨는 “계약직을 채용하거나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적은 돈을 주면서 쓴 셈이다. 인턴이 끝난 뒤 영화업계 자체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털어놨다.

#. 대학을 갓 졸업한 C씨는 2학년 2학기 겨울방학부터 3차례 사무직 인턴을 경험했다. 2번은 대학차원의 현장실습 프로그램이었다. 업체에는 C씨의 출결을 관리하고 대학과 연락하는 담당자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교육은 받지 못했다. 실습비도 30만원만 지급 받았다. C씨는 교통비와 식대로 지출하기에도 모자라 주말알바를 했다. 업체에서 일하며 출장을 갔지만 출장비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C씨는 “학생실습이라는 허울좋은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값싼 노동력에 불과했다. 그 시간에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했다먼 더 좋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호구’였다”고 말했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기업이 교육·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대학생과 청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가 도를 넘고 있다. 대학도 산학협력이나 직업체험 등의 명목으로 학생들을 부당한 노동착취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개최한 청년노동 이슈포럼에서 참가자들은 교육을 거쳐 사회에 진입하는 ‘과도기 노동’이 정당한 대가 없이 청년들을 착취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법적 보완을 촉구했다. 과도기 노동은 기업이 숙련도 제고와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청년을 인턴이나 시용계약, 수습채용 등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대학생들은 학점과 졸업이수를 위해 실습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안전사고와 부당한 처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유니온이 지난해 81개 대학연계 현장실습 기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59개 업체가 주 40시간이상 근무하는 현장실습생들에게 월 평균 35만 1993원을 지급하는 데 그쳤다. 50만원에 미달하는 비율은 81%에 달했으며 실습생들의 전체 평균 시급은 1684원으로 2012년 최저시급 4580원의 37%에 불과한 실정이다.

김 위원장은 “대학이 진행하는 현장실습은 인턴과 사업장 양자간 계약으로 이뤄지는 다른 과도기노동과 달리 교육기관과 학생, 사업징의 3자간 계약으로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교육기관들은 취업률을 올리느라 기업의 눈치를 보고 학생들에 대한 보호 의무를 포기했고 정부당국도 제도준수와 실습생 보호를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교육기관이 진행하는 현장실습은 끊임없는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지난 2011년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고3학생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진 뒤 2012년 울산신항만 작업선 전복사고로 실습생 1명이 사망했고 지난해도 폭설로 인한 지붕 붕괴로 실습생이 압사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처럼 교육기관의 현장실습이 교육 목적을 잃고 학생들을 단순노무를 대체하는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시키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업의 청년노동력 착취는 엄연한 불법이다. 이상훈 청년유니온 자문노무사는 “법적으로 시용이나 수습 등 근무명목보다 근로형태가 더 중요하다. 지금 만연한 것처럼 교육훈련이나 현장실습의 외피를 쓰고 실질적으로 사용노동관계가 성립되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으로 정한 5580원의 최저시급 이상을 받아야 하고 4시간 근무 30분 휴식 등 근로자의 권리가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인턴십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인턴을 처음 도입한 미국은 연방대법원판례와 노동부 고시를 통해 무급인턴을 사용하는 기준 6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위반하면 근로자로 보아 노동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특히 인턴이 정규직 근로자의 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준으로 적시하고 있다. 또 인턴사용기간에 제한을 둬 한번 인턴십을 채용한 부서는 일정기간 이상 인턴사 원을 채용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 청년유니온 '과도기 노동의 청년착취 실태(2015)' 발췌

프랑스는 인턴의 사용기간을 6개월로 제한했으며 한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인턴의 수를 제한하도록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과 달리 인턴에게도 임금을 사회보장급여의 15% 이상 지급하도록 해 523.26유로를 받는다. 한화로 약 70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장하나 의원은 “국내 대학가의 산학협력 참가학생이 무급인턴 등으로 체불된 임금을 환산하면 약 1000억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착취를 막기 위한 법제도적 개정을 추진하겠다. 청년층 과도기 노동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은 법적 다툼이 필요 없는 문제이므로 올해 안에 가시적이니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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