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직(인하대 교수·前 기능올림픽 한국기술대표)

한국은 국정과제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일학습병행제 시행으로 분주하다. 직업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제도가 고학력 청년실업자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까지 해결될 수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직업교육의 정체성의 강점을 키울 혁신보다는 오직 제도시행이 주는 재정지원에만 사활을 걸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정부 또한 실적만을 위한 보여주기 식의 제도강행에 중점을 두는 게 안타깝다. 지난해 11월에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박람회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많은 직업교육전문가와 언론은 “방문객들에게 준비한 기념품을 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시도는 좋았는데 홍보효과 미흡과 임기응변의 행사였다”는 등의 평가를 내놨다.

박람회 개최 불과 한 달 여전에 경기도 일원에서 열린 제49회 전국기능경기대회를 무관심속에 기능인들만의 행사로 치룬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NCS기반 직업교육시스템과 전국기능경기대회는 본질과 현상의 관계로 추구하는 목적과 주관 부처도 같다. 두 행사를 함께 개최했다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일석다조(一石多鳥) 최상의 직업교육축제가 됐을 것은 자명하다. 통상 국제기능올림픽대회가 열릴 때도 직업교육관련 부대행사를 빼놓지 않고 개최한다. 청소년을 위한 직업교육의 로드맵 소개와 국민을 위한 직업교육 정서함양에 기능올림픽만큼 좋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따로따로 박람회는 혈세낭비는 물론 능력중심사회실현의 풍토조성을 배가시킬 기회를 놓친 것이다. 실상도 파악하지 못한 정책부재로 행사의 시너지효과를 못냈다.

제조업의 강점을 지닌 기능선진국들의 직업교육 성공비결은 차별된 교육풍토와 국민의식에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교육풍토를 간과한 실적위주의 국정과제 추진은 마치 나무를 서둘러 심어 숲을 이루려는 조림사업처럼 보인다. 기능선진국의 기능경기대회는 특히 초·중등 학생들이 담임교사의 인솔로 참관수업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최고의 기능강국인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직업교육의 현장학습이다. 이것이 기능선진국의 차별된 직업교육정서다. 기술·기능경시의 낙인(stigma)이 붙은 멸시천대풍조는 한국이 기능강국이긴 하되 기능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국정과제인 NCS와 일학습병행제의 정착도 교육풍토조성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절실한 것은 △직업교육시스템 구축 △기술·기능인을 제대로 대우하는 정책 △최고의 숙련기술인 육성비전 등의 3단계를 로드맵으로 하는 ‘숙련기술인육성 삼위일체시스템'을 구축하는 직업교육 백년대계를 세워야한다. 새로운 제도 시행도 좋지만 능력중심사회실현의 걸림돌부터 제거해야한다. 말뿐인 기능인 우대정책보다도 능력의 가치만큼의 대우도 못 받는 현실괴리의 실상과 기능강국이 기능선진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원인도 제대로 파악해야한다.

그동안 우리는 NCS나 일학습병행제도 보다도 더 이상적인 선진제도를 시행해봤지만 능력중심사회 구현에 실패했다. 오히려 직업교육의 정체성 실종과 대학만능주의만을 더 부추겼다. 이유는 언급한 삼위일체시스템의 핵심인 기술·기능인을 제대로 대우하는 풍토조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기능선진국의 직업교육성공모델인 NCS와 일학습병행제는 풍토가 이룩한 제도이지 제도가 풍토를 조성한 것이 아니다. NCS와 일학습병행제도 ’숙련기술인육성 삼위일체시스템‘ 속에서 조화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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