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시간강사·비정년트랙·계약직 연구원 확산에 등돌리는 외국인 박사
한국 두뇌유출지수 60개국 중 37위 "연구인력 공동화" 우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대학가에 교수·연구자 등 우수 인력 수급 문제가 심각해질 전망이다. 해외유학을 택한 한국인 박사급 연구인력의 절반 이상이 귀국하지 않고 국내 박사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연구인력도 5명 중 4명이 취득 뒤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대학가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형태가 이 같은 고급 연구인력의 공동화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해외 박사의 국내복귀는 빠르게 줄고 있다. 미국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은 2010년 1378명에서 2013년 1383명으로 3년간 큰 차이가 없지만 같은 기간 국내복귀를 선택한 해외박사는 621명에서 334명으로 절반이 줄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자료를 보면 지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1만80명 중 62.9%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국내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박사들의 ‘리턴’도 두드러진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사학위를 취득한 외국인은 753명이다. 이 가운데 국내 취업을 택한 외국인 박사는 146명이다. 5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63.6%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이 중 한국에 계속 머물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30%에 그쳤다.

외국인 유학생이 박사학위 취득 뒤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국내 한 유명 사립대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중인 중국인 A씨(29, 전자공학)는 언어문제와 함께 국내 대학가의 비정규직 노동형태가 그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시간강사가 절반을 넘는 국내 대학가와는 달리 중국은 학위를 딴 뒤 대학에 취업하면 대부분 전임으로 선발된다는 것이다. A씨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지 않다. 중국으로 돌아가면 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일 할 수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직능원 자료를 보면 국내 박사학위 취득 뒤 해외에서 취업한 외국인 박사 중 94.5%가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비정규직은 5.5%다. 비정년트랙 등 전임교원이 빠르게 줄고 있는 국내 대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이다.

A씨는 올해로 국내에서 4년 6개월 동안 머물렀다. 중국 하얼빈대에서 전자공학 학사학위를 따고 국제교류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현재는 학내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경험한 과중한 업무강도도 한국에서의 취업을 포기하게 된 이유다. A씨는 오전 9시에 ‘랩(Lab)실’로 출근해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스케쥴을 강요받았다. 할 일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매뉴얼에도 없는 관행이다.

언어도 큰 벽이다. 한국어를 1년간 집중적으로 배웠지만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래도 랩실에서 연구만 진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전공이 공학이라 의사소통도 영어를 주로 쓰고 강의도 영어로 진행되기 떄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취업하거나 취업 이후 승진 등에서도 언어적인 장벽은 큰 부담이다. A씨는 “지인이 한국기업에 중국인임을 밝히고 지원했는데 면접에서 한국어로만 질문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탈락했다”고 말했다.

반면  인도네시아 등 영어를 주로 쓰는 국가에서는 취업이 오히려 쉽다. 굳이 현지어를 배울 필요도 없다. 이들 국가에선 노동강도나 처우도 한국과 비교해 나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한국에 머물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A씨는 강조했다. 그는 학위 취득 뒤 강사나 연구원 제의를 받아도 거절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인 해외박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2013년 ‘두뇌유출지수(Brain Drain)’는 4.63이다. 조사대상 60개국 중 37위를 차지했다.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고국을 떠나 해외에 근무하는 인재가 많은 것을 나타내 국가경제 피해가 심하다. 한국은 2011년 59개국 가운데 44위(3.68)을 기록한데 이어 2012년 49위(3.40)를 차지했다. 두뇌유출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난 노르웨이(1위·8.04)나 스위스(2위·7.6) 등 선진국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한 전문가는 “고급 연구인력을 유인하고 정착할 만한 연구환경이 국내에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지난해 조사결과를 보면 국내에서 일하는 이공계 박사 1478명 가운데 37.2%가 해외취업을 희망했다. 이유로는 △연구 환경(52.3%) △자녀교육(14%) △외국정착(7.8%) △임금수준(6.4%) 등이 지목됐다. 기본적인 환경이 미비하고 삶의 질이 매우 낮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대학 연구원은 상당히 불길한 전망을 내놨다. 그는 “2년 비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이 태반이다. 당장 내일이 캄캄한데 무슨 삶을 설계할 수 있겠느냐. 대학이든 연구기관이든 연구인력 공동화 현상이 곧 한국을 강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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