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유·공동대응 안 해 소비자의 권리 잃고 기업에 끌려다녀

똑같은 물품도 가격 천차만별… 지역 총판의 먹잇감 신세로
공동대응 논의는 걸음마 단계…공동구매 플랫폼 구축 시급

『자본과 규모를 갖춘 대학들이지만 ‘호갱(어수룩한 소비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부 대학들이 뒤늦게 불공정한 구매·건축 분야 유통구조를 깨닫고 대응을 고심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외부 환경은 더 팍팍하다. 올해 학부등록금을 올린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애초 인상안을 내놨던 대학마저 정부의 압박에 하루아침에 철회했을 정도로 여론은 싸늘하다. 부족한 재원 마련 방안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경비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내걸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재정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노동 윤리와 맞물려 재정 논리만 들이댈 수 없는 노릇이다. 대학들이 최근 구매·건축 분야 비용절감 방안을 놓고 부심하는 배경이다. 구매·건축 분야에서 대형 소비자인 대학은 ‘갑’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점 유통구조와 오랜 관행, 폐쇄적인 정보공유 등으로 대기업과 유통업자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자성이 터져 나온다. 한국대학신문은 ‘거대한 호갱’이 되어버린 대학들의 현실을 3회에 걸쳐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상> 소비자 권리상실한 대학
<중> 경영논리로 풀어보는 구매전략
<하> 공동대응 방안을 찾아라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손현경·이재익·김소연 기자] #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모 지역 대학총장들은 우연히 소프트웨어 구매 가격을 서로 물어보고서 깜짝 놀랐다. 같은 제품인데도 가격이 모두 달랐을 뿐만 아니라 계약기간도 어디는 3년 어디는 5년 하는 식으로 모두 달랐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해결방안은 마땅치 않았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본사가 지정한 지역총판(벤더)이 독점 판매권과 AS권리를 가지고 있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총판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대학에 협상이 아닌 ‘통보’를 하고, 이를 관철시키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모 대학총장은 대교협에 공동대응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 거대한 호갱, 대학…독점 판매업자만 ‘콧노래’ = 대형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기업, 건설사에게 대학은 거대한 호갱이다. 규모와 자본을 갖춘 힘센 소비자인 대학이 실제로는 어수룩한 소비자로 전락한 까닭은 ‘일대 일’ 거래 방식 때문이다. 대학 수는 400개교(2014년 399개교, 한국대학교육연구소)에 달하지만 ‘다(多)대 일’ 거래는 거의 없고 개별 대학 단위로 물품을 구매하고 건축계약을 한다.

소프트웨어 구매가 대표적이다. 스스로 거대한 조직이면서, 다양한 전공분야를 거느린 대학은 경영과 교육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한다. 수도권 모 대학의 기획예산처 과장은 “우리는 대형대학이 아님에도 소프트웨어 구매비용은 억 단위로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그는 “MS윈도우와 한글, V3, MS오피스 등은 보통 천 카피 필요하다. 그 외에 SPSS, CAD를 비롯해 포토샵과 일러스트, 마야 등 다양한 디자인소프트웨어가 있다. 여기다 이공계대학도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 수가 수만 명에 달하고 각종 연구소를 거느린 대형대학의 경우에는 이보다 몇 배 많은 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저작권이 강화되면서 복사본을 쓰는 꼼수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 대학 관계자는 “과거에는 복사본을 쓰고 그랬지만 지금은 MS에서 대학별 카피수를 체크하고 있다. 복사본을 쓰다가 걸리면 학교 컴퓨터 대수에 따라 벌금을 물린다. 보통 컴퓨터가 1000여대를 넘어가니 엄청난 돈이다”고 전했다.

특히 학교 특성상 IT수요가 높은 사이버대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총판의 횡포를 강하게 비난했다. 모 사이버대 총무과 구매담당자는 “나라장터에 공식 공급가가 공개돼 있지만, 실제로는 공급가로 직접거래가 불가능하고 본사가 지정한 지역총판을 통해야만 한다”며 “본사가 눈감아 주고 지역총판은 대학별로 다른 마진을 취하는 구조”라고 성토했다. 또한 총판은 보통 해당 소프트웨어의 지역 A/S권한도 독점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대학이 총판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 ‘통보’를 거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소비자는 갑, 판매자는 을’이라는 상식이 뒤집힌 셈이다.

■ 대규모 대학 단가계약, “비교하면 배 아프다” = 일부 대형 구매계약의 경우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대형대학은 업체 간에 경쟁을 붙여 싼 값에 단가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가계약은 다른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하더라고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학들은 자신들의 계약 내용을 서로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업체들이 개별대학을 ‘각개격파’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한 지방대학 관계자는 “대학별로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자존심보다도 입찰 업체의 영업비밀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와 B업체가 있는데 서로 입찰가를 얼마를 써내고 있는지 공개가 되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대학들이 공동으로 싼 제품을 구매하려 노력하기보다 특정 업체와 단가계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입장에서는 조금 싸게 사는 것보다 돈을 더 쓰더라도 좋은 제품을 사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국가 입장에서는 중소기업을 밀어주라고 하지만, 대학들은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고 유지관리까지 책임져 주는 대기업과의 계약을 더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울지역 대학 물품관리담당자는 “우리 학교 내에는 상주하는 PC업체가 있다”며 “해당 업체가 대학 안에 있는 PC의 납품과 수리까지 책임진다. 매번 입찰을 통해 업체를 따로 선정을 하는 대신, 특정업체와 거래하면 혹시 컴퓨터가 고장 나도 바로 바로 수리 해주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전했다.

앞으로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대신 대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방 사립대 구매시설팀 관계자는 “조달청은 정책적으로 나라장터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대기업 제품의 품목을 줄이고 있으며 PC도 마찬가지다. 유지보수가 편리한 대기업 컴퓨터를 선호하는 대학들은 나라장터를 통한 입찰 참여에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고 대학가 분위기를 전했다.

■ ‘스마트 소비’ 사각지대에 놓인 소규모·사이버·지방大 = 처음부터 대형 소비자로서 ‘갑’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대학들도 존재한다. 소규모 대학과 사이버대학, 지방대학 등이 대표적이다. 수도권 대학이나, 지방 대형대학이라 해도 소규모 구매의 경우 혜택이 적은 수의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규모 대학은 웬만해선 구매 규모가 크지 않아 공개입찰 자격을 갖추기조차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한 구매 수단인 나라장터의 공개입찰에 참여하려면 품목별로 합계수량이 기준금액 이상이 되어야 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건설 분야는 1억 이상, 소프트웨어 및 전산은 3000만원이 되어야 구매입찰을 진행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소규모 대학의 경우 이 같은 규모로 구매할 일이 많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같은 이유로 사이버 대학도 갑의 지위를 누리기 힘들다. 대부분 소형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지방 사이버대학 관계자는 “우리대학은 같은 산하에 대형 일반대학이 있기 때문에, 이 대학을 통해 PC 구매 등에서 단가계약 혜택을 입어왔다. 다만 볼펜과 종이, 복사기, 프린터, 프로젝터 등 사무·전산용품은 워낙 제품이 다양하고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협력대학을 통한 단가계약 혜택을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지방대학의 경우 경쟁 입찰을 하고 싶어도 지역 내에 대안이 될 만한 업체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한 지방대학 총무팀 계장은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지방의 업체들이 점점 사라진다. 갈수록 대학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볼펜을 하나 하더라도 용도에 따라 대학이 원하는 볼펜이 특별히 있을 수 있는데, 업체마다 특화된 볼펜이 따로 있다. 어떤 업체는 모나미에, 어떤 업체는 모닝글로리에 특화돼 있는 식이다. 특별히 원하는 게 있다면 선택지가 많지 않아 가격을 깎을 여지가 적다”고 아쉬워했다.

중대형 대학도 소규모 구매일 경우 불리하긴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필요에 따라 소규모로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공개입찰을 통하기 보다는 거래해오던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한 지방 사이버대 관계자는 “알고도 조금 더 비싸게 사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소개하면서 “어떤 물품을 소규모로 구매하는 일은 행정 소모가 많은 편이다. 필요한 정도만 사면되는데 매번 업체를 바꾸기도 힘들다. 긴급하게 문구류나 행사용품 등이 소량 필요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업체를 접촉하고 구매계약을 처음부터 다시 체결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가 않다. 계약이라는 것이 문구 하나 하나 검토를 거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거나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 강남대와 성결대, 평택대, 한세대, 한신대, 협성대 등 경기 서남권 6개 대학은 재정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포괄적 업무협약’을 지난해 말 체결했다. <사진> 한명섭 기자

■ 대학가 공동대응 논의 지지부진…지역기반 논의 ‘걸음마’ = 상황이 이런데도 대학가의 공동 대응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일부가 지역별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개선책을 모색하고 나섰지만 걸음마 단계다. 협의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길 꺼릴 정도로 업계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대학별로 규모와 이해관계가 다른 점도 난관이다.

가장 앞서가는 지역은 경기 서남권이다. 강남대와 성결대, 평택대, 한세대, 한신대, 협성대 등 경기 서남권 6개 대학은 재정효율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포괄적 업무협약’을 지난해 말 체결했다. 한 회원대학 관계자는 “우리 대학들은 정원이 많지 않아 모두 합쳐야 2만6000명 정도로 서울 대규모 대학과 비슷한 규모가 된다. ‘소프트웨어 구매·계약’을 비롯해 각종 구매 계약을 할 때 규모의 우위를 확보해 단가를 낮추기 위한 공동구매를 추진하는 것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모 지역의 대학들도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을 서로 공개하고 공동대응을 논의 중이다. 이 지역 대학 관계자는 “우리 지역 총장들은 공동구매에 관심이 많다”면서 “거의 매달 지역 총장협의회를 열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좋은 덕에 소프트웨어 구매가격을 공유하는 등 문제인식 같이 하고 추후 협력방안을 논의 중이다. 모  대학 총장이 대교협에 공동구매를 해 대학에 공급해달라는 제안을 했는데, 답변은 못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공동구매뿐만 아니라 ‘공동운영’을 협의 하는 대학들이 늘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공동구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동구매를 생각해 본적 없다는 한 사립대학 홍보팀장은 “공동구매라는 개념이 액수가 큰 것을 전제로 하는데, 소모품은 딱히 액수가 클 필요가 없다. 물품을 선정하고 수요조사를 하는 과정이 소모적이다. 차라리 원래 계약하던 곳과 거래를 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적게 사더라도 빠르고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대학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등록금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마당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구매 시기를 조율하는 것도 숙제다. 수도권 사립대학 기획예산처 과장은 “만약에 어떤 기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한다고 해도, 학교마다 원하는 구입시기가 다르다. 어떤 학교는 3월, 어떤 학교는 9월까지 원하는 식이라면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복잡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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