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복고신드롬… 본류는 대학가요제

77년 1회부터 뜨거운 열기…숱한 히트곡·스타 낳고 2012년 폐지

▲ 1977년 시작된 MBC대학가요제는 1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는 당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문화방송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사진=세광음악출판사)

『우리나라 근대 고등교육의 역사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시작돼 올해로 70년이 된다.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서양에 비해 초라한 역사라고 단정 지을 일이 아니다. 우리 대학의 70년은 수많은 동량을 배출해 압축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국가의 첨단산업을 이끄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룩한 놀라운 역사이기도 하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개혁으로 인해 대학인의 자부심이 날로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대학신문은 대학 70년 역사를 통해 ‘한국대학의 유산’을 선정함으로써 우리 대학이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한국대학의 유산'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정책, 장소, 유적 등을 총망라한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46세의 나이로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마왕’ 신해철은 사람들을 위로하듯 마지막 유고집을 남겼다. 유족의 뜻에 따라 한 출판사가 펴낸 이 산문집의 출간일은 12월 24일. 고인이 지난 1988년 제12회 MBC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한 날이다. 그에게 있어 대학가요제 대상은 이승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기억이었을지 모른다.

■ 대학생들의 억눌린 에너지 분출구 = 대학 70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유산으로 대학가요제가 손꼽힌다. 당시의 억눌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응축된 젊은이들의 열정과 재능이 한꺼번에 분출했던 축제가 바로 대학가요제였다.

당시 대학가요제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기는 폭발적이었다. 이는 1977년 당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문화방송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한 프로그램 기획자가 “대학문화와 방송과의 접목이 방송의 질과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착안했다는 대학가요제는 하마터면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어수선한 시국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본 방송국 측이 제작·편성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지만, 대학가요제에 대한 인기는 본선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예산을 진행하면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예선 절차를 진행한 MBC의 여러 지방사에서 행사장인 체육관의 문과 유리창이 몰려든 관중 때문에 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방송국 관계자들에게는 입장권을 요청하는 고위 인사들의 청탁이 빗발쳤다.

7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의 인기몰이에 대해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대학가요제와 그 바통을 이어받은 동양방송(TBC)의 해변가요제는 달라진 젊은층의 취향을 반영하고자 한 상업적인 의도와 대마초 파동과 정치적 억압 등으로 ‘뻥 뚫린’ 젊은층의 가슴을 대신 채워줄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배려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 대학가요제의 성공은 대학가의 문화에도 적잖은 변화를 몰고왔다. 지금은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대형기획사가 음악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주도했다는 평이 나을 정도였다.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그룹사운드 결성 붐이 조성돼 송골매와 옥슨80 등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세에 밀린 대학가요제는 2012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사진=MBC)

■ 오디션에 밀려 폐지... 최근 복고열풍으로 재조명 = K-POP이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 가요사에 있어서도 대학가요제는 중요한 유산이다. 우리 가요사에 길이 남을 숱한 전설이 바로 대학가요제 출신이기 때문이다. 실제 1970~80년대에 대학가요제의 참가 또는 입상을 계기로 많은 가수들이 데뷔해 큰 인기를 누렸다. 배철수, 임백천, 심수봉, 노사연, 유열, 김광민, 무한궤도(신해철), 015B, 전람회(김동률), 이한철 등이 그들이다. 특히 제1회 대상을 받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지금도 수없이 리메이크될 정도로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식을 줄 모르던 대학가요제의 인기는 199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개방과 다양화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대학가요제를 통해 주류 음악계에 안착하는 뮤지션은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Mnet의 슈퍼스타K(2009년 시즌1 출범), MBC의 위대한탄생(2010년), SBS의 K-POP 스타(2011년), KBS 2TV의 톱밴드(2011) 등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도 대학가요제의 퇴장을 재촉했다.

결국 2012년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개최된 36회 행사를 끝으로 대학가요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MBC 측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와 과거 수상자들의 서명운동으로 2014년 재개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끝내 최종 폐지를 결정했다.

대중들이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보다는 ‘성장 스토리를 가진 스타’를 원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였다. 가요제는 스타의 ‘성장 스토리’를 보여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에 반해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수의 탄생과정이 결과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오디션은 일반대중들이 심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가요제에 비해 민주적인 요소다. 참여대상을 대학생으로 못 박은 점도 ‘환풍기 수리공’ 출신 우승자 같은 인생 역전극을 차단해 일반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최근 전자음에 기댄 무의미한 단어와 비속어, 영어가 뒤섞인 아이돌가수들의 노래속에서 갈수록 많은 이들이 옛 노래를 그리워하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무한도전의 ‘토토가(토요일토요일은가수다 특집)’가 90년대라면, ‘대학가요제’와 ‘쎄시봉’은 70년대의 공감 추억이다. 따지고보면 ‘토토가’ 신드롬에 앞서 MBC 놀러와를 통한 ‘쎄시봉’ 신드롬이 먼저 있었다. 최근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하기도 했다. 한국대학의 유산, 대학가요제와 그 감성은 지금도 살아있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 걸/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신해철, ‘그대에게’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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