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입찰 10개 대학이 뭉치면 협상력 10배 늘어"

조달청, 대기업 배제·까다로운 기준··· 오히려 ‘선택 폭’ 좁혀

『자본과 규모를 갖춘 대학들이지만 ‘호갱(어수룩한 소비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부 대학들이 뒤늦게 불공정한 구매·건축 분야 유통구조를 깨닫고 대응을 고심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외부 환경은 더 팍팍하다. 올해 학부등록금을 올린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애초 인상안을 내놨던 대학마저 정부의 압박에 하루아침에 철회했을 정도로 여론은 싸늘하다. 부족한 재원 마련 방안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경비 절감과 경영 효율화”를 내걸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재정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노동 윤리와 맞물려 재정 논리만 들이댈 수 없는 노릇이다. 대학들이 최근 구매·건축 분야 비용절감 방안을 놓고 부심하는 배경이다. 구매·건축 분야에서 대형 소비자인 대학은 ‘갑’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점 유통구조와 오랜 관행, 폐쇄적인 정보공유 등으로 대기업과 유통업자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자성이 터져 나온다. 한국대학신문은 ‘거대한 호갱’이 되어버린 대학들의 현실을 3회에 걸쳐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상> 소비자 권리상실한 대학
<중> 경영논리로 풀어보는 구매전략
<하> 공동대응 방안을 찾아라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손현경·이재익·김소연 기자]대학가를 위축시키고 있는 최악의 재정난을 극복할 방안의 하나로 공동구매가 떠오르고 있다. 실제 공동구매가 여러 면에서 가장 현명한 소비전략이라는 데 경영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다만 계획을 수립하고 수요를 조사하는 과정이 번거롭다는 점이 장애요인이다. 무엇보다 대학별로 규모와 소재지, 재정상황 등에 따라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하는 공동대응 플랫폼을 구축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열이 모이면 열배”…공동대응은 힘을 키운다 = 최근 일부 발빠른 대학들이 특정지역협력체 등의 형태로 공동구매를 논의하기 시작한 배경도 대안으로서 충분히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동구매는 소비자인 대학들의 ‘바잉파워(buying power)’를 키운다.

공동구매는 구매자들이 판매자에게 물건을 구입할 때 대량 구입함으로써 가격 협상력을 극대화해, 제조업체나 판매자들과의 교섭에서 차별적인 가격 할인을 이끌어내는 구매방식이다. 가격은 ‘모이면 내려간다’는 명쾌하고 단순한 원리다.

길용수 한국대학경영연구소 소장은 “통상적이고 표준화된 물품은 대량구매를 하면 가격인하를 유도할 수 있는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대량구매를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다양한 할인혜택을 지원할 여력이 발생한다. 제조 및 유통과정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통과정의 경우 직거래에 가까운 형태의 거래가 가능해진다. 한 유통기업 마케팅 이사는 “대학 10곳이 뭉친다면 혼자서 계약할 때보다 더 싼 건 당연한 경제원리”라면서 “물론 대학은 연간계약을 통해 이미 상당히 싼 가격에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다만 유통단계로 따졌을 때, 대학입찰에는 보통 제조사의 각 지역총판 밑에 지역대리점이 투찰한다. 공동구매는 유통단계를 제조사 또는 지역총판까지 끌어올려 실제적인 직접거래를 가능케 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공동구매를 선호한다. 한 IT관련 유통기업 부장은 “기업들은 안정된 시장을 확보한다는 점 이외에 미래 예비 광고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학과의 공동구매에 구미가 당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PC를 비롯한 각종 소모품의 경우 교직원도 쓰지만 절대 다수는 학생들이 사용한다.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항상 사용하고 보아왔던 브랜드를 사회에 진출해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대학은 규모가 크므로 기업은 미래 소비자를 얻는 간접광고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투명한 거래도 촉진한다. 또다른 유통업 관계자는 “현재 대학들은 조달청의 나라장터와 자체입찰, 수의계약 등의 거래방식을 갖고 있다”며 “수의계약은 분명 다른 방식에 비해 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수의계약 거래 내역은 필수적인 감사대상이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고 지적했다.

■ 적자 안고 가야하는 대학들 활로 모색 = 외부 환경도 대학들로 하여금 공동구매와 같은 재정효율화 방안을 찾아 나서도록 몰아가고 있다. 등록금이 대학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일부 사립대학들은 학생 수 감소로 이미 ‘생존경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학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라도 거의 모든 대학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경비를 절약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대학 기부금까지 줄고 있어 재정난이 가중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간한 ‘고등교육기관의 기부금 실태 분석 연구’(연구책임자 김지하)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통틀어 1조 1300억 원을 상회했던 기부금이 8년만인 2012년에는 5000억원 규모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대학들은 본격적으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했다. 수 년째 인건비를 동결하고 경상비를 줄이는 등 긴축경영에 들어갔다. 수도권 모 대학 기획처장은 “과거에는 확보 차원에서 구매했던 물건도 요즘에는 당장 필요가 없다면 구매하지 않는 추세”라면서 “대학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 등록금 인상을 할 수 없으니 등록금도 수년 째 동결하고 있다. 결국 인건비를 동결하고 작은 부분에서도 최대한 절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 행정부서 간 조율도 필수가 됐다. 서울 소재 모 대학 예산담당자는 “예산 한도 내에서 부서별로 나눠 쓰려다보니 조율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이번에도 등록금 동결 결정이 나면서 결국 예산담당 팀이 각 부서와의 조율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재정난으로 교육을 질조차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교원확보율, 입학정원 감축, 등록금 인하 노력, 장학금 확충 등 대학평가에서 신경써야할 부분들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대학 운영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다.

수도권 대학 한 기획처장은 “교원확보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 번 교원을 뽑고 내보낼 수도 없는데, 예산은 부족하다. 교원은 늘리고 정원은 감축하다보니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돈 많은 대학만 살아남을 것”이라면서 “교육부는 대학 퇴출은 안하겠다고 했지만 정책 방향을 모르겠다. 이대로는 문 닫는 대학이 분명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 누가 왜 공동구매를 하나 = 대학가에선 이제 막 공동구매 플랫폼 구축논의가 물밑에서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각급학교, 지자체 등은 이미 공동구매를 활용해 재정효율을 끌어올린 사례가 많다. 특히 최근 각광받고 있는 소셜커머스는 공동구매 플랫폼의 혁신으로 일컬어진다.

소셜커머스는 공동구매 방식으로, 정해진 인원이 구매를 결정하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쿠폰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를 말한다. 공동구매자를 모으거나, 판매자와 소비자 간 상품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데 SNS가 활용되기 때문에 소셜커머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소셜커머스 업체는 유통시장에서 스타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들 대형 소셜커머스에선 항공권과 공산품, 식품, 티켓, 호텔숙박권 등 거의 모든 상품을 취급한다.

지자체도 공동구매를 적극 확용한다. 서울시와 제주·광주·창원시는 전기자동차 공동구매를 추진해 공급가를 낮추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재정적 부담을 최대한 줄이면서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두 배가량 비싼 차 가격을 떨어뜨려 전기차 시대를 한시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전기차는 해외에 비해 가격이 30~40% 비싸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정부기관에서도 공동구매를 통한 예산 절감에 긍정적이다. 일례로 서산교육지원청은 최근 산하 12개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공동구매에 나서 예산 3300만 원의 절감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서산교육지원청은 각 학교로부터 조달 공동구매 수요조사 신청을 받아 PC 151대와 모니터 69대를 대상으로 다수공급자 계약 2단계 경쟁(MAS) 방식 및 물품선정위원회를 통한 물품 선정과정을 거쳤다.

구매력이 낮아 경쟁력이 약화된 ‘화장품전문점협회’도 공동구매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11월부터 공동구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구매 추진에 필요한 수요조사와 상품공지, 주문접수, 배송을 관리하는 공동구매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 대학가 공동구매, 스스로 나서야 = 정부가 대학가 공동구매 노력을 도와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음에도 대학들이 조달청을 적극 활용하지 않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대학의 살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셈이다.

국내 대학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교육전산망운영본부(KREN)는 대학가 공동대응을 통한 최저가격 인터넷 사업자 선정, 소프트웨어 구매협상 등을 주도하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은 해마다 줄고 있다. KREN 본부가 있는 서울대 정보화본부 관계자는 “대학들이 인터넷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KREN이 중심이 돼서 공동대응을 하려고 하는데, 정부가 예산을 자꾸만 줄여 회원대학들의 응집력이 약화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달청의 나라장터도 최선의 대안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길용수 소장은 “조달청의 구매입찰 방식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중소기업 육성이고 다른 하나는 공급자간 투명한 경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달청은 나라장터에 참가할 수 있는 기업의 요건을 중소기업 위주로 지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공급가격과 품질, 서비스 면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 배제돼 실수요자인 대학은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방 중소대학 한 관계자는 “올해부터 조달청을 통해 대기업의 PC를 구매할 수 없게 됐다”며 “대학들은 정해진 예산범위 내에서 무조건 싼 것보다는 품질이 보장되고 유지보수 서비스가 용이한 대기업 PC를 사실 선호한다. 대학들의 현실적인 요구를 충족해 줄 수 있는 제2의 공동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대학도 하나의 공적 조직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 마련도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공동구매에서 ‘신뢰 구축’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길 소장은 “만약 경비절감을 위한 공동구매가 오히려 품질 저하와 사기 등의 피해로 이어진다면, 대학들은 실제 비용이 이중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일정한 자격을 갖춘 우수 업체만을 선정해 철저히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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