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기 바쁘고 쓸줄 모르는 적립금" '홍익대에 대한 도전' 나선 법대생

[한국대학신문 신나리 기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5시간이 넘게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있다. 책걸상은 오래돼 두꺼운 원서 올려 두기가 버겁다. 춥고 환기도 안 되는 지하 공간에서 과제를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학생들은 공간이 없어 지하 공간을 전전하는데, 학교 건물에는 외부 업체가 입점해 사무실로 쓰고 있다. 학교는 왜 학생 대신 회사에 공간을 빌려주는 걸까. 학생들을 위한 투자에는 왜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이유가 궁금해진 한 학생이 학교에 정보공개 청구를 요청하며 자료를 모았다. 자료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학교가 돈이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학생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마냥 ‘쌓아두고만’ 있었다. 적립금이라는 명목으로.

홍익대에 재학 중인 엄재희(법학4) 씨는 홍익대의 적립금을 확인한 후 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적립금을 어떻게 쌓은 건지 공개 질의를 준비했고 이를 위해 학생들 서명을 받았다. 뜻이 맞는 학생들이 모였고 이들은 ‘돈만 쌓는 홍익대에 대한 도전’(홍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아주 당연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것 아닌가요. 그 당연한 상식이 학교에선 실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홍도전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예요.”

실제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알리미에 공시한 자료를 살펴보면, 홍익대의 누적 적립금은 6641억 원으로 전국 대학 중 3위다. 학교의 자산 역시 꾸준히 증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이 지난해 발간한 ‘박근혜정부 대학 구조조정 진단과 대안’ 자료집에 따르면 홍익대의 자산은 2003년 6933억8700만원에서 10년만인 2013년 1조 5686억 8100만원으로 2. 26배가 증가했다. 학교가 돈이 없어 시설이나 환경, 학생을 위한 투자를 못한다고 보기 어렵게 만드는 수치다.

“학생들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몸보다 작은 책걸상에 앉아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6000억 원이 넘는 적립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립금 액수를 보면 돈이 없어 학생에게 투자 못한다는 말이 안 나올 겁니다.”

그에 따르면 홍익대 적립금의 상당 부분이 건축적립금이다. 자료공개청구를 통해 적립금 내용을 확인해보니 2013년 건축적립금이 5947억 원이었다. 적립금 비중에서 건축 적립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넘더라는 것이다.

“학교는 한 해 이자수입으로만 200억~300억 원이 생기지만 이를 다시 건축적립금으로 쌓아둡니다. 이자수입을 학생들의 교육에 투자하지 않고 적립금으로 이월하고 있는 것이죠.”

누구보다 학생들은 대학이 학교, 학생에 투자하길 바라고 있다. 홍도전이 지난해 ‘적립금 어디에 쓰고 싶은가요’란 질문으로 학생들에게 설문을 진행한 결과 설문에 참가한 605명의  학생 중 207명이 ‘건물 리모델링’을 요청했다. 전임교원 확충과 기초학문 단과대 신설, 강의실 의자교체를 바라는 학생들도 많았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건축적립금이 원래 여기에 쓰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쌓기만 한다는 겁니다. 전임교원 확충과 강의실 의자 교체 모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학생들의 요구입니다.”

그는 적립금을 ‘학생들이 받아야 하는 혜택을 못 받으며 쌓은 돈’이라고 정의했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충분히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학교가 학내 시설을 정비하고 전임교원을 늘리며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 게 그가 활동하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다.

엄재희 씨와 홍도전은 적립금을 시작으로 실험실습비 등 학교의 ‘지출’에 대한 감시를 이어갈 계획이다.

“등록금에 포함된 실험실습비의 사용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으나 학교가 거부했습니다. 결국, 행정심판을 청구해 놓은 상태에요. 3월 중 판결이 나올 겁니다. 당연히 알 권리가 있는 내용을 심판청구해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지요. 대학이 학생을 위한 투자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물러서지 않고 지켜볼 겁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