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본지 논설위원/춘천교대 교수)

황우여 부총리의 발언이 대학가를 흔들어 놓고 있다. ‘취업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취업에서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 때문이다. 인문학보다 취업이 먼저라는 교육부 수장의 직설화법은 인문계 학과를 구조조정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으라는 지침과도 같다. 교육부 역시 부총리의 소신을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을 선정해 3년간 75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책에 따르면 산업 수요 중심의 학과 개편과 정원 조정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할 예정이다. 정원만 조정해도 대학이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학은 내부 구성원 간의 민주적 합의를 구할 필요도 없이 일방적으로 인문계 중심의 정원축소가 가능하고, 교육부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수혜자는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산업 인력을 대학에 요구해온 시장권력이다. 황우여 부총리의 정원 조정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시는 국가권력과 사학 중심의 대학권력, 그리고 시장권력이 결탁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가권력이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개혁을 추진한 이래 늘 인문계는 줄였고, 이공계는 늘려왔다. 1960년대 중반부터 대학은 산업화를 이끌 인력을 개발하는 양성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당시 대학들은 경제 성장에 따른 급격한 변화 속에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할 여력이 부족했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과학 기술 인력 개발에 초점을 맞춘 대학 개조를 유도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의 대가로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도 사립대 지원에 쓰였다. 그리고 이들 재정 지원은 고스란히 이공계에 집중됐다. 국공립과 사립을 불문하고 이공계 학과와 학생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1968년 국제대학총장연합회에서 백낙준 연세대 명예총장은 “기술 개발이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만큼, 우리의 고등교육, 특히 직업교육은 이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이공계 위주의 대학 개조를 지지하기도 했다. 시장권력과 국가권력, 그리고 대학권력의 삼각동맹에 의한 대학교육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50여 년간 대학 개혁 혹은 대학 구조 조정이란 이름을 내세운 대학정책은 산업화 프레임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동안 대학 정책은 ‘선진공업사회를 지향하는 국가의 교육은 풍요로운 물질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생산인력을 양성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시장논리에 기반을 두고 추진됐다. 그 때마다 위기에 놓인 인문계를 중심으로 ‘대학 본연의 역할을 방기한 근시안적 정책에 매달려 학문의 기초를 파괴하고 대학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우를 범하는 일을 즉시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비판적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대학들이 특성화나 산학협력과는 별도로 정원만 조정해도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대학을 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기지로 여긴 것이다. 국가가 일률적으로 통제하고자 한 산업화 프레임으로부터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의 시점에서 산업화 프레임에 갇힌 대학정책은 분명한 퇴행이다. 무엇보다 산업역군 혹은 취업전사를 길러내는 동안 대학교육은 놀랍도록 획일화되고 있다. 한국의 교육부는 세계 대학이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인문학을 중시하는 미국의 교양학부대학(Liberal Arts College)과 같은 대학은 한국에선 존립이 불가능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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