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 법안을 놓고 4년제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대학은 직업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4년제 지방대학들은 그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극렬 반대에 나서 법안처리문제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전문대학은 숙원사업이었던 만큼 상임위 통과 직전 대교협의 개입 때문에 심의 보류가 되자 원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 된 밥에 재 뿌렸다'는 억울함이다. 4년제 대학들이 우려하는 '전문대의 4년제화'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해도 대교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0년 전 교명과 대학장 명칭 규제 완화가 근거가 마련된 뒤로 4년제 대학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불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생태계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는 4년제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조정에 나서야 하는데 아무도 총대를 메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군가가 달아야 하는데 워낙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그 어느 누구도 선뜻 방울을 달려고 나서지 않는 것이다.

당초 전문대학수업연한 다양화는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국정과제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했지만 4년제 대학들의 입장때문인지 결국 의원입법으로 발의됐고 그 처리는 국회가 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전문대학은 전문대학대로, 4년제 대학 특히 지방대학은 그들대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국회에 설득작업에 나섰고 지역구의원들은 지역 해당대학들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해를 넘겨 계류중이다. 국회의원들은 당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하기 보다는 개별적인 의견을 굽히지 않은 채 대학협의체들끼리 우선 합의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교육부는 국정과제인데다 의원입법되었으니 국회에서 처리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형국이다.

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개발과 더불어 학벌중심주의에서 능력중심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다. 동시에 지방대 육성 또한 주요 국정기조라는 점이 고민의 단초를 제공한다. 4년제 지방대의 목소리를 단순히 '제 그릇 챙기기'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지방대들이 마주한 현실은 차갑기 그지 없다.

현재 고등교육 정책은 큰 격동기에 놓여 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하위권 대학들은 기타 교육시설로 전환하게 될 전망이고, 동시에 기존 백화점식 대학을 탈피해 교육의 질을 제고하도록 일반대와 전문대 모두 특성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고등교육의 판을 신중하게 점검하지 않은 채 법안처리를 하나의 쟁점 이슈처럼 단순히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난해 799개의 NCS 모델이 개발됐고, 올해부터 2017년까지 특성화고와 전문대 등 모든 훈련기관 교육과정에 도입될 예정이다. 특성화 사업 연차평가나 구조개혁평가, 가능하면 포스트 5.31 교육개혁의 구상 단계에 올려놓고 적극적으로 연계 검토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대학을 '교육 분야의 장자(長子)'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장자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내적 갈등을 겪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부모로서 책임 방기나 다름 없다. 교육부는 비록 국회에서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지만 이제라도 대교협과 전문대교협은 물론 산하 대학들, 구성원, 산업계, 인문계 고교와 특성화 고교 등 가능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협의의 길을 도출해 야 한다. 일전에 황 부총리와의 만남에서 교육부는 지원하는 부처지 군립하는 부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강조한 바 있다. 각 대학협의체가 개별적으로 국회에 몰려가는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관망하는 것은 대학을 지원하는 부처의 자세가 아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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