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모집·취업 '짐' 벗고 교육.연구하기 원해… 정책 따라 이동도

개강 직전에 사표, 계약기간 무시도 학생들 학습권 직간접 피해
“공고한 교수 서열화… 지방 지원 확대해야 우수 교수·학생 선순환”

[한국대학신문 신나리‧정윤희‧이재익 기자] ‘교수 업적평가 1위, 연구실적 1위’ 지방 한 사립대의 얼굴이자 자랑이었던 교수는 결국 서울행(行)을 택했다. 세계적 학술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세계 최초’의 수식이 붙는 연구를 발표하던 교수였다. 이 대학 관계자는 “연구와 강의, 모두를 잘하는 교수로 유명해 대학의 자랑이었다. 대학에서는 절대 놓치기 싫은 분이였지만, 어쩌겠는가. 지방의 사립대에서 서울의 유명 대학으로 가겠다는 데, 가지 말라고 매달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방대의 우수한 교수가 서울, 수도권 행을 택하는 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BK21, 로스쿨 유치 등 정책이 변화하고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본격화 되면서 교수 이동은 더 잦아졌다. 각 대학이 국책 프로젝트에 선정되기 위해 관련 경험과 경력이 많은 교수들을 스카우트 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서열화처럼 교수의 서열화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지방대의)연구지원과 환경,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교수 이동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지방대 교수 유출대학은 손 쓸 방법 없어 = 지방대 교수의 수도권 이동은 대학의 서열화, 연구 환경의 질, 처우 수준 등 여러 이유가 겹쳐진다. 대학 평가의 주요한 지표로 교수 업적평가가 포함된 이후 수도권 대학 역시 지방의 ‘우수 교수’에게 눈독을 들여왔다. 지원환경과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대는 교수 유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한숨만 내쉴 뿐이다.

지방대 교수들의 수도권 유출은 구조조정에 내몰린 지방대들의 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방대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교수에게도 ‘학생 충원, 취업’의 임무를 주고 있다. 대학의 역할변화나 불가피한 상황을 감안해 교수의 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지만 많은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에 힘을 쏟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는 2013년에만 2명의 교수가 서울로, 1명의 교수가 지역의 국립대로 이동했다. 공과대학 교수부터 약대 교수까지 이들 교수는 대학에서 연구 실적이 좋기로 유명했다. 지방에서 서울 S대로 이직한 공과대 교수는 “아무래도 지방과 서울은 연구 환경이 다르다. 최근 모든 대학이 구조조정에 시달리며 교수들도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는 좀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교수들의 이동이 지방의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해 결국 학생들의 학습권에도 직접적인 불이익을 안긴다는 점이다. 강의 시간표가 나온 후에 사표를 제출하는 교수들 때문에 대학은 ‘대체 교수’를 투입해 시간표를 조정한다. 여기에 전공 교수와 과목을 고민해 수업을 택한 학생들은 기대한 것과 다른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직’을 미리 통보하기 보다는 새 학기 직전 2월 말 혹은 3월 초에 사표를 제출한다”며 “그때는 학교 측의 신학기 강의배정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수강신청 또한 끝날 때다. 교수의 이직으로 인해 학교는 강의배정 취소를 하고 학생들도 수강신청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꼬집었다.

지방대는 교수 유출에 사실상 손을 쓸 방법이 없다며 울상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만큼 대안을 찾아야 하지만, 대학의 개별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지방의 한 사립대 총장은 “우수 교수가 학교를 떠나는 것은 경쟁력 약화와 직결된다. 나아가서는 지역경쟁력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개별 대학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지방 사립대 관계자 역시 “SCI논문 한 편당 11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교수들이 연구와 논문을 위해 학교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우리 대학에서 지원받고 논문 써서 그 논문을 토대로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한다. 단순히 대학의 지원책으로 우수한 교수를 모시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교수 유출을 ‘학벌사회’를 근간으로 한 ‘교수 서열화’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 은 “교수채용 또한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방대에서 입직하고 차후 수도권으로 이동해 가는 현상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학벌사회에서 빚어지는 문제”라며 “현 학벌사회에서는 대학의 서열화와 같이 교수의 서열화가 존재하고, 실제로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있는 교수들이 교수로서의 지위를 높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 ‘정책이 교수 이동을 부추겨’ = 교수임용의 증가 추세는 정부의 국책 연구사업과도 맥이 닿아있다. 2000년 초부터 두뇌한국(BK)21 사업,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연구사업, 기초학문육성지원사업, IT·BT·NT 등 전략분야 연구사업 등 다양한 국책프로젝트가 봇물을 이루면서 대학들은 관련 분야의 ‘경력교수’ 모시기에 적극 나섰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동아시아지역학 연구로 BK21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대는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로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전 일본 도쿄대 교수를 초빙했고, 생명공학부에는 문정환 전 미국 로와대 교수를, 연세대도 나노화학 분야에 천진우 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정보산업공학 분야에 김창욱 전 명지대 교수를 영입했다. 

경력교수 모시기 현상은 실적이 우수한 지역대학의 교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2001년 총 21명을 선발한 성균관대는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8명(19.5%) △해외대학에서 4명(9.7%) △지방 소재 대학에서는 9명(21.9%)을 영입했다. 

충북지역의 한 사립대 교무처장은 “BK21 사업 등을 통해 연구중심 대학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수도권 대형 대학 중심으로 지방대학에 근무하면서 연구실적이 뛰어난 교수들을 모셔갔다”면서 “당시 서울지역의 10개 대학에서 3, 40명의 지방대학 교수들을 영입했고 이는  거의 ‘쓸어담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충남지역의 한 사립대 관계자 역 “교수가 외부 프로젝트를 따면 학교 측에서 ‘사업단’을 꾸려 과제에 임하는 것”이라며 “학교의 자금이 들어간 것임에도 연구성과는 교수 개인이 가져간다. 당시 많은 우수한 지방 대학의 교수들이 수도권 대학 혹은 거점 중심대학으로 이동하니까 교내에서는 '기계 구입비는 학교에 내어 놓고 가야하지 않느냐'는 웃지 못할 말도 나왔었다“고 밝혔다.

2005년 이후에는 로스쿨 유치 경쟁에 따른 법학과 교수들의 이동이 부쩍 늘었다. 2006년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 시설·재정 등 물적 요소보다는 교육과정의 질과 교원의 교육·연구 능력 평가 부분 강화가 주요 골자였다.

로스쿨 유치하려는 대학은 연구실적이 우수한 교원 확보가 급선무였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인가 평가 대상은 교육목표, 학생 복지, 입학전형, 교육과정, 교원, 교육시설, 교육재정 관련 학위과정 등 8개 영역, 총 69개 항목으로 1000점 만점으로 이중 교육과정과 교원 분야 배점 비율이 29%, 19.5%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교육과정의 경우 전공과목 담당 교수의 업적(학술논문과 저작물) 평가 항목에 총점 290점 중 가장 큰 비중은 50점을 할당했다. 교원 분야에서도 전임 교원의 최근 5년간 연구실적, 교원 1인당 학생수 등에 대한 배점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충남지역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연구업적이 있는 교수들이 있어야 로스쿨 인가 신청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수도권 혹은 지역거점대학에서 전국의 법학과 교수들의 연구실적 스크린이 이뤄졌고, 이후 법과대 교수사회가 요동쳤다”고 말했다.

한국법학교수회 이상경 사무차장(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로스쿨이 되면서 사법시험에서 합격자를 얻지 못하거나 정원이 줄어들어 ‘법학과’ 자체가 폐과되는 경우를 염려해 전국의 법학과 교수들이 로스쿨을 신설하려고 하는 당시 30여개의 대학으로 대거 이동해 갔다”면서 “더욱이 이동해 간 대학이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하자 인가를 받은 타 대학으로 연쇄 이동한 사례도 많았다”고 말했다.

로스쿨 설립인가를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자체적으로 교수충원률을 기준 이상으로 높이는 현상도 벌어졌다.

이 사무차장은 “당시 서울시립대는 로스쿨 모집정원 100명을 기준으로 30명의 교수를 영입했지만 결국 교육부로부터 로스쿨 정원 50명을 인가받았다”며 “로스쿨은 이미 자체적으로 교수가 충분한 상황이라 현재는 법학전공 교수들 간 이동은 거의 없다. 우리끼리는 ”블랙홀은 닫쳤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재정지원사업 유치 경쟁도 교수이동의 주요한 원인이다. BK21플러스 사업과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 대학특성화 사업 등에 따른 해당 분야 교수 영입과 스카웃이 크게 늘었다. 문제는 교수들의 이동이 지방의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한다는 데 있다.

전남의 한 사립대 교무처장은 “지역대학도 수도권 대학과 똑같이 ‘전임교원확보률’을 채워야 한다. 평가지표상 지난해 보다 0.1%라도 떨어지면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라면서 “실제로도 새 학기 시작 직전에 사표를 던지고 떠나는 교수들의 자리를 채우려 부랴부랴 자리를 메꾸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4월 1일 기준 평가지표를 반영하는 대학구조개혁을 앞두고 교수들이 새학기 개강 직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정부정책의 선택과 집중의 심화로 ‘몰아주기식’ 지원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임 연구원은 “연구비와 환경 지원이 물적토대가 되고, 이에 대학원생이 들어와 인적토대가 이뤄지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한 지방의 대학은 몇 안 되는 상황”이라며 “수도권으로 편중된 지원을 지방으로 더 많이 확산해야 지방의 대학도 교육·연구기능을 안정적으로 수행해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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