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 임상혁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올 새해 벽두부터 한국대학신문은 외국계 학술출판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e-저널의 구독료를 대폭 인상하여 대학 도서관들과 갈등이 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학술 논문에 대한 저작권 이용료가 고가로 매겨지면 연구자나 학회에 수익이 되는 면도 있으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학자 집단은 학술정보의 생성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성한 소비자여서, 가격 인상의 부담을 가장 크게 지는 쪽이 되며, 이는 연구 환경에 제약을 준다. 이러한 사정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각자가 출판 수익을 내는 것보다 다함께 서로의 저작권을 공유하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학술정보를 생산하는 학회, 대학 도서관 등의 기구들이 서로 연대하여 새로운 학술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고 학술 정보를 무상으로 교류, 공유하며, 외부에도 개방하자는 움직임이 번져갔다. 이를 흔히 오픈액세스라 하는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하다. 한 예로 KISTI가 주축이 되어 1997년부터 운영해 온 과학기술학회마을은 777개 기관, 1148종의 학술지가 참여하여 자신들이 생산한 3만여 건의 논문을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의학계에서도 한국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가 있고, 도서관 쪽에서도 AOK가 출범하였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은 KCI를 운영하면서, 여기에 논문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국외 데이터베이스에도 연계시켰다. 이러한 원문 제공은 거의 유례가 없는 경우이다. KCI 시스템이 이렇게 학술 정보를 서비스할 수 있는 것은, 학술지의 등급을 매기는 기관인 연구재단에 그 평가를 위해 학회들이 원문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내외의 오픈액세스는 학술 정보를 생산하는 단체 곧, 연구자, 학회, 대학, 연구소 등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 연대 속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KCI 시스템은 연구 지원과 학술지 평가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남의 자료들을 무상 제공하겠다는 방식이다. 여기에 필요한 동의는 학회 단위로 받는데, 동의서를 제출할 때에는 저자들의 저작권 양도 확인서 등을 첨부하도록 한다. 게다가 수록 논문의 온라인 무상 제공이 학회지 평가 항목에도 설정되어 있다(최대 7점). 굳이 분류하자면 아카이브 방식이라 할 수도 있겠는데, 기탁을 강하게 종용하는 분위기이다. 지원과 평가라는 양날의 검을 지닌 기관이 하는 강한 권유는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저작물을 무상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작자에게 평가상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위는 저작권법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개정 전의 저작권법에서는 현행과 달리 ‘저작물’을 제한적으로 정의하여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이라 했다. 학술 저작은 이때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전통적이고 본원적인 권리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학술정보의 저작권에 대해서만은 인정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크게 나온다. 외국처럼 그것으로 이용료를 크게 챙기기는커녕 그 행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아마도 오픈액세스의 기반을 위한 논리 구축 차원일 것이다. 오픈액세스는 저작권을 포기하자는, 또는 포기시키자는 취지에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존중받아 마땅한 남의 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나의 논문도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바로 저작권을 상호 존중하는 방식인 것이다.

학술정보의 생산자들이 서로 모여서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오픈액세스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적극 찬동하는 방향이다. 비용도 꽤 드는 일이라서 국가가 정책으로 뒷받침할 만한 사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연구자들에게 저작권 양도를 종용하여 그 저작물들을 모아다가 오픈 하는 것은 오픈액세스의 본령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저작권자를 기반으로 하고 그를 존중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연구자들이 스스로 학술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학회나 학자들이 이에 쉽게 동참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이들이 국내에서 나아가 국외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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