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노동자 "용역업체 소장이 협동조합 설립, 임금삭감·인원조정"

▲ 지난 25일 연세 세브란스 빌딩에서 해고된 노동자와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연세대 법인 사무처를 찾았다. 이들은 기존 세브란스 빌딩을 관리하던 용역업체 관리직원들끼리 만든 '협동조합'에 대해 연세대 법인의 설명을 요구했지만 이날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대학신문 신나리 기자] 연세대가 이번엔 세브란스 빌딩의 시설관리 용역 노동자 해고 논란에 휩싸였다. 더구나 협동조합이 용역업체로 선정되면서 임금삭감, 해고 등의 주체가 되자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악화에 협동조합 제도가 악용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5일 연세대 법인 사무처에 해고된 세브란스빌딩 시설관리 노동자 15명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노동자를 해고한 연세대는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들 해고 노동자들에 따르면, 연세대가 세브란스빌딩의 시설관리 용역계약을 신생 협동조합과 체결했다. 협동조합은 인건비를 삭감하고 일부 노동자를 해고했다.

해당 협동조합은 그동안 용역계약을 계속 체결했던 업체 직원이 설립했다. 이 협동조합은 기존의 노동자들에게 30% 임금을 삭감한 계약을 수용하도록 요구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연세대가 용역비 절감을 위해 협동조합을 제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브란스 빌딩은 연세대 재단이 수익용 자산으로 보유한 4채의 빌딩 중 가장 큰 규모로 지상 24층 지하 6층의 빌딩이다. 이곳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23년 간 시설물 관리, 미화를 도맡아온 노동자들은 이번 사태가 협동조합을 이용한 ‘신종 구조조정’이라고 비난했다. 세브란스 빌딩의 시설물 관리를 맡아오던 용역업체의 직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입맛에 맞는 직원들만 채용하고, 그렇지 않은 노동자 7명을 해고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연세대 재단이 협동조합과 계약을 하기 전, 1993년부터 연세 세브란스 빌딩의 시설관리를 맡아온 업체는 동우공영이다. 지난해 12월 동우공영의 관리소장이었던 김 모 씨를 비롯한 관리직 직원 6명은 ‘한국자산관리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동우공영에 소속됐던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연세 세브란스 빌딩 시설관리직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A씨는 “관리직들끼리 비밀리에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나에게는 계약 만료 이틀 전, 협동조합을 만든 사실을 통보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재단의 새로운 파트너는 ‘한국자산관리협동조합’이다. 그동안 관리를 맡았던 동우공영과의 계약만료일이 다가오자 연세대 재단은 신생업체인 한국자산관리협동조합과 3년 계약을 맺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한국자산관리협동조합은 계약 만료를 이틀여 앞둔 노동자들에게 입사지원서를 건네며 임금을 최대 30% 삭감한다고 설명했다"며 "지원서를 쓰면 논의해 채용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세브란스 빌딩에서 하자‧보수를 담당했던 B 씨는 “입사지원서를 쓴다고 다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저임금으로 데려다 쓴다는 뜻”이라며 “실제로 우리를 해고하고, 온라인에 연봉 1900만 원을 조건으로 신규직원 채용공고를 냈다”고 말했다. 15년 이상 경력이 있는 B 씨의 연봉은 3000만 원 수준이었다.

▲ 지난 25일 연세 세브란스 빌딩에서 해고된 노동자와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가 연세대 정문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세브란스 빌딩을 관리하던 용역업체 관리직원들끼리 만든 '협동조합'에 대해 연세대 법인의 설명을 요구했지만 이날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임금 삭감과 악화된 노동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시설관리, 환경‧미화 등 노동자 7명은 해고됐다. 이들은 원청인 연세대가 용역비 절감을 위해 협동조합 설립을 (용역업체측에)제안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시설관리부에서 근무했던 C씨는 “협동조합 이사장이 ‘세브란스빌딩 관리본부의 계약에 관해 구두 약속을 받고 협동조합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용이 승계되지 않은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의 노조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결국 협동조합, 그리고 이를 허락한 연세대는 싼 값에 말 잘 듣는 사람을 쓰고 싶었던 것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협동조합이 불법 설립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하해성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협동조합 설립이 약 3달 동안 이사진 6명 외에는 아무도 모를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조합 가입도 5년 이상 근무한 이들만 가능하다고 한다. 조합이사장이 설립 과정에서 재단 측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정황의 발언도 나왔다”며 “결국 연세대 재단이 비용절감 이유로 전 현장소장과 짜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연세재단빌딩분회는 “조합 이사장은 이전 용역업체의 소장이었다. 용역업체 직원이 그 용역업체와 경쟁관계인 또 다른 용역업체(협동조합)를 설립하는 것은 취업규칙에 명시된 경업금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협동조합 설립 자체가 위법이자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경업금지의무’란 ‘회사의 임원, 근로자, 동업자 등이 동종영업을 직접 하거나, 회사에 취업하는 형태로 간접적으로 동종영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의무’를 말한다. 세브란스의 시설을 관리하고 있던 동우공영의 직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다시 세브란스와 계약을 맺었으니 이를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데 ‘협동조합’이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혈 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의 제도 취지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협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하고 사용자의 편의를 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학교법인 연세대는 용역을 주고 있는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방식, 노동자의 해고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인 관계자는 “현재 연세대 수익 사업의 결과가 좋은 편이 아니다. 기존에 용역근로자에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갔다. 비용절감이 필요해 인원감축은 어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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