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정착한 경우 발전계획수립에 기여
평가주기 연장·우수성과 확산 등 개선 필요

[한국대학신문 차현아 기자]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역량을 평가하는 ‘대학 자체평가’ 제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9년 도입 당시에는 대학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진단하고 발전 방향을 수립하게 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후 대학 구조개혁 평가와 기관인증평가 등 각종 평가가 신설된 상황에서 자체평가가 ‘평가의 중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제성이 없어 일부 대학에서는 형식적인 보고서만 탑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자체평가가 실시된 배경에는 2007년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있다. 당시 제11조2(평가 등)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학교는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기관의 교육과 연구, 조직과 운영, 시설과 설비 등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점검하고 평가하여 그 결과를 공시해야 한다.

2008년에 마련된 고등교육기관의 자체평가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자체평가는 2년마다 1회 이상 실시해야 한다. 다만 그 해 기관인증평가를 받은 경우 그 보고서를 갈음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해당기관 홈페이지와 대학공시자료에 공개해야 한다. 평가의 가이드라인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 존재하지만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지표를 통해 평가해도 무방하다.

9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들은 홈페이지에 자체 평가보고서를 공시하고 있다. 다만 형식과 내용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이다. 강제성이 없기에 일부 대학의 경우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빈 보고서'를 올리기도 한다. 같은 대학의 연차별 보고서도 차이가 나 대학 기관인증평가 보고서로 갈음했던 해의 보고서와 그렇지 않은 해의 보고서는 질적 차이도 컸다. 2011년 대학기관평가 인증이 처음 실시된 당시 기관인증평가를 진행했던 일부 대학들의 경우 기관인증평가 보고서를 자체평가 보고서로 대체해 공시했다. 이 경우 자체평가 보고서는 기관인증평가와 동일한 결과를 담고 있다. 2년이 지난 2013년의 같은 대학이 실시한 자체평가 보고서는 이에 비해 형식만 겨우 갖춰놓은 보고서인 경우도 있다.

경기지역 모 사립대학의 경우 2013년 자체평가 보고서 상의 지표별 결과를 ‘우수’ ‘개선필요’ ‘양호’ ‘탁월’ 등으로 모호하게 명시했다. 종합의견 항목에서도 각 항목의 구체적 평가 수치는 밝히지 않은 채 ‘평가값이 낮다’ ‘개선이 필요하다’ 정도의 문구로만 평가했다. 평가의 근거 없이 결과만 밝힌 형식적 보고서인 셈이다.

대학가에서는 평가과잉의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학 자체평가가 도입될 당시와 지금은 여러가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 자체평가가 도입됐던 2007년에는 대학 기관인증평가와 대학 구조개혁평가 정책도 마련되지 않은 시기였다. 대학들이 외부 평가가 아닌 자체적 진단에 의해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2011년 대학 기관인증평가 도입과 정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대학 구조개혁평가 등이 이어졌다. 자체평가를 통한 내부 역량진단보다 정부의 대학평가와 같은 외부 평가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충청 소재 한 사립대 자체평가담당자는 “자체평가 취지 자체는 좋다. 대학이 스스로 발전 방향을 다시 점검해보고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대학 구조개혁 평가까지 이뤄지면서 갑자기 대외적 평가가 늘고 중요성도 커졌다. 대학 입장에서는 정부의 구조개혁평가와 대학 인증평가, 언론사 평가에 자체평가까지 모두 받는 것이다. 지표 맞추기와 보고서 작성만도 벅찬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일부 대학은 대학 자체평가와 대학구조개혁평가, 2012년에 진행됐던 대학기관평가인증대학 모니터링 평가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정부 주도의 대학평가가 생존과 관련되는 현실에서 자체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자체평가 취지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체평가 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일부 대학들의 경우 결과의 활용도는 상당히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용역연구로 진행한 ‘2014년도 대학자체평가 모니터링’ 연구에 따르면 전국 107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체평가 결과가 대학 발전방향 수립과 특성화 전략 수립에 기여했다는 의견이 67.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4.9%의 대학들이 실제로 대학발전계획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재영 전국대학평가협의회 회장(중앙대 평가팀장)은 “자체평가 취지도 살리되 대학의 평가 과잉 현실도 감안하기 위해서 자체평가 주기의 연장 등 법령 개선이 필요하다. 자체평가가 대학의 발전 전략 수립을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도록 우수 성과 사례 확산 등의 제도 정착 지원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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