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오찬호(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 오찬호 박사는 8일 대학의 기업화 문제를 지적하며, 대학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학문 불균형 등을 지적했다. 사진 = 송보배 기자.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2024년 청와대 회의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린다. UN이 ‘자살률1위’ 한국 정부에 “자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UN에서)강제탈퇴시킬 것”이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장관은 ‘사회적 책임’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빨갱이 생각’이라 역성을 낸다. 그래도 ‘UN이 난리를 치니’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사회학자를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전공자를 구하지 못한다. ‘교육선진화’란 명목으로 사회학, 인문학이 오래전 대학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에 답하기 위해 역으로 인문학이 사라진 세상의 미래를 이같이 그렸다. 수년간 대학의 기업화는 급격하게 진행됐다. 대학 경영의 효율을 위해 용역 형태의 고용이 늘고 학생모집과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은 빠르게 통폐합되고 있다. 2014년 기준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는 686개로, 인문‧사회 계열 학과를 모두 더한 423개를 크게 웃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자유로운 학문 공동체’라 말하기에는 이미 멀리 왔다는 것이 대학가의 중론이다.

오 박사는 지난 2013년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20대의 자화상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펴내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지난 4일 기업화된 대학의 자화상을 담은 ‘진격의 대학교’를 발행해 다시금 화제에 올랐다. 책에서 대학은 20대가 공감능력을 잃고 괴물이 되도록 만드는 시스템의 한 톱니바퀴로 그려진다. 대학은 학문, 공동체, 공감을 가르치는 장소가 아닌, 취업을 위한 사관학교로 변했다. 그는 효용의 논리에 떠밀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을 자아를 잃고 돌진하는 ‘진격의 거인’에 비유하며 지금이야말로 대학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 오 박사가 책에서 인용한 제니퍼 위시번의 말이다.

그는 2011년 강사휴게실에 만난 취업특강 강사에 대한 인상이 이 책의 출발이 됐다고 말했다.

"벤츠를 타고 온 그 취업특강 강사의 당당한 자태와 여타 다른 강사들의 풀 죽은 모습에서 완벽하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에피소드만 모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의 기업화 문제는 지금도 시끄럽지 않습니까"

그는 넥타이 메는 법을 알려주고 인사담당자가 좋아할 책을 추천한다거나 하는 일이 실제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데 탄식했다. 기차에선 창가가 상석이고, 상사 보좌할 땐 뒤에서 걸어야 하고. 이런 것들을 실제 대학 강의실에서 가르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청소노동자 노임을 제대로 지키는 대학이 단 한군데도 없다는 점도 그는 강하게 꼬집었다.

"그같은 노동자 문제를 해석하고 진단해 주는 기관이 대학이여야 하는데 대학이 그러는 것은 둘째치고 임금을 제대로 주는 것 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큰 문제라는 것이죠. 노임임금은 최저임금보다 시급을 1000원 정도 더 줘라 이런 겁니다. 대학이 그걸 아깝다고 나오면 안된다는 거예요."

대학의 기업화, 오박사는 그 끝을 어디라고 보는 것일까.

"종착지의 가장 극단이 책에서 가정한 2024년 청와대 회의실입니다. 대학도 사회도 "경비원 잘라. 청소 노동자 잘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상처받는 사람들은 항상 있지만 더 이상 그런 상처가 사회적인 아젠다가 되지 않는 것이죠. 실상 교수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학의 변화에는 외부적인 요인과 압박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선 대학이 무조건 사회나, 기업, 교육부를 맞춰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오찬호 연구원은 8일 인터뷰에서 효율성에 매몰된 대학의 현실을 꼬집었다. 사진 = 송보배 기자.

"사회가 변화를 요구하면 변화해야 한다고 대학 스스로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가, 기업이, 교육부가 진실을 담보할 수는 없는 것이죠. 만약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변한다면 대학은 그것에 문제제기하고 따라가지 말아야 하는 게 대학의 사회적 책무인 겁니다. 그런데 뭔가 외부에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대학이 발맞추려 드는 것이에요."

대학에서 나타나는 학문 융복합의 기형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그는 일침을 가한다. 학교에서 융복합과 관련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융복합이 무엇인지 교수도, 학생들도 전혀 모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하고 있다.

"융복합이 학과내, 학문간, 계열간 종류도 많습니다. 지금 대학에선 융복합이 경영학 전공자에게는 “나는 경영학만 하지 않았다”는 어필이 되는 것이라서, 인문학 전공자는 “내 전공은 인문학이지만 경영학을 충실히 했다”는 냄새를 풍기기 위해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인문학이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미였다. 인문학을 하면 기업의 상품이 더 팔릴 수도 있다는 개념으로 인문학이 활용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문학의 위기 자체가 자꾸 외부의 관점으로 인문학을 평가하면서 생기는 것이지요. '취업률이 낮은 것이 인문학의 위기다' 이렇게 얘기가 되는데 인문학은 취업률이 높았던 적이 없어요."

인문학이 사라지면서 생겨난 변화들. 그는 사회 전반을 바로보는 촉수, 그 더듬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에는 오랜 우리 사회의 성장위주의 패러다임 이런 것들이 얽히고 섥혀 있지 않습니까. 얼핏 보면 추상적인 얘기지만 사회적인 촉수는 그걸 입체적으로 구체화를 시킵니다. 그렇게 사회적 촉수로 볼 때 큰 원인이 잡히니까 확률적으로도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어요. 땅콩리턴과 세월호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말하면 음모론이란 식으로 흘러가지요. 사회적 촉수가 없는 겁니다.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