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껍데기는 가라’고 목이 쉬도록 외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누구를 껍데기라며 그렇게 목이 쉬도록 외쳤던 것일까

? 1967년에 발표된 이 시는 서서히 대학가에 알려지면서 운동권 학생들의 애송시가 되었다. 껍데기의 의미가 군사독재정권도 되고 외세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의미한다. ‘중립의 초래청 앞에 서서’ 맞절하는 ‘아사달과 아사녀’는 +중립의 평화지대에서 남북이 함께 만나 한 식구가 되는 통일의 감격적 +순간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60년대 이후 이 나라의 학생운동사에서 등장한 세가지의 대표적인 구호를 집약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것은 위험한 시였다. 시적 의미의 다양성과 영원한 보편성을 무시하고 한 시대의 정치적 구호로 의미를 국한시킨다며 신동엽은 그 +당시의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올가미가 씌워지기 쉬웠다. 그 뿐만 +아니라 몇몇 어용 문인들은 이미 그것을 ‘빨갱이 시’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문인협회에 매일 출입하는 기관원에게 그렇게 일러바쳤고 또 어디서나 그렇게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그는 화를 면했다. 왜냐하면 발표되던 당시 +신동엽은 별로 유명인이 되지 못해서 감시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한 이태 후 4월에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의 시를 불온시라고 모략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뒤였다. 그런데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아마도 지금은 그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함부로 체포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졌으니까. 그 중에서도 특히 달라진 것은 학생 운동이다. 이번 중앙대 총학생회 출범식은 대표적인 예가 된다. 과거 같으면 출범식이 흔히 가두시위로 이어졌는데 중앙대에서는 학생 1천여명의 헌혈운동 참가가 이날의 기념 행사였다. 통일을 외친 신동엽의 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같은 외침을 함께 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렇게 헌혈운동이 기념행사가 된 것은 그만큼 우리 학생운동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더욱 성숙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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