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억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

▲ 박승억 숙명여대 교수는 학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업식 구조조정은 학문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 송보배 기자.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오늘날 학문이 처한 상황은 반대 방향에서 서로 강한 힘으로 당기고 있는 두 말굽자석 사이에서 진동하는 쇠구슬과도 같다.”

박승억 숙명여대 교수(교양교육원)는 책 ‘학문의 진화’를 통해 학문의 현 상황을 이처럼 진단했다. 한쪽에선 근대 이후 지속돼 온 학문의 전문화가, 다른 한쪽에선 그 지식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문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전문화된 학문 영역에 융합과 통섭이라는 큰 물결이 굽이친다. 대학에도 정부와 사회의 변화 요구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학문과 대학에 불어 닥친 이러한 파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박승억 교수는 융합과 통섭에 대한 요구는 기존 관점으로 학문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현재 학문에 요구되는 융‧복합 기조가 아주 새로운 흐름은 아니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기존 학문에 활력을 주고 강력한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학문영역에선 1930~1940년대부터 학문에서 합동과정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습니다. 특히 1990년대 말 미국 등에선 첨단 기술들을 융합해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도 했지요.”

그런 융복합이 현재 한국 대학에선 구조조정의 눈속임으로 쓰인 건 아닌가. 이 질문에 그는 학문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불도저식 개혁은 학문생태계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답했다.

“만약 시장논리와 결탁된 상태에서 학문의 구조변화 이런 것들을 해나간다면 이걸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시장은 항상 상품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유행이 끝나면 빨리 버리고 다음으로 변화하죠. 그런데 학문이란 긴 시간을 요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이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융합의 좋은 이점을 보기도 전에 굉장히 큰 사회적 비용을 들여야 할 겁니다.”

시장논리에 떠밀려 상품을 폐기하듯 학문을 폐기한다면 훗날 그 복구에 큰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란 뜻이다.

▲ 박승억 교수는 오늘날 학문이 전문화와 통합이라는 양극단의 힘 사이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사진 = 송보배 기자.

학문은 기업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고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무시하고 기업이 빨리 적응하듯이 대학도 그런 식으로 적응을 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 좋은 문제 해결책은 아니라고 그는 보고 있다.

인문학 붕괴가 학문생태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깊이 나타냈다.

“한 생태계에 다양성이 사라지면 그 생태계는 상당히 위태로워지게 되죠. 우리의 삶과 사회를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이런 세상을 보는 눈이 사라지는 겁니다. 마치 한 생태계에서 특정한 개체군이 사라지면서 그 생태계 전체가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떻겠어요?”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