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있다. IMF의 힘겨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그렇지만 저주받은 학번들이 맞이한 이 차가운 겨울은 이렇게 한 해가 저물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와도 안 끝날지도 모른다.

그동안 대학만 나오면 누구나 웬만큼은 결혼하고 살만한 직장도 얻고 얼마 뒤에는 아파트도 마련하고 자가용 승용차도 굴리며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게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대학을 나와도 배고프고 쓸쓸하던 사람들은 예전에도 많았다. 특히 50년대나 60년대에 젊은이들이 겪은 고통은 지금보다 더 심했다. 김승목의「서울 1964년 겨울」에는 우연히 길가 참새구이 포장집에 만난 세 사람의 얘기가 나온다. 한 사람은 스물 다섯쯤 되어 보이는 구청직원이고 또 한사람은 서른 대 여섯쯤에 매우 가난해 보이는 사내다. 그리고 대학원생 안씨가 있다.

"김형, 굼틀거리는 것을 시랑하십니까?"

"안형, 파리를 시랑하십니까?"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대화들을 나눈다. 찬바람 부는 겨우 저녁에 포장집에 들어선 이들은 삶 자체가 그렇게 무의미하다. 그들은 거기서 우연히 그렇게 만나고 각자 자기 소주병을 기울이며 이런 대화화 나누다가 포장집을 나온 후 한 여관으로 들어가 각각 다른 방에서 잠 이 든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서른 대여섯쯤 되어 보이던 사람은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고 구청직원과 대학원생은 각각 자기 갈 길을 가며 헤어진다.

이들은 모두 외로운 젊은이들이다. 자살한 사내나 나머지 두 사람이나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쁨도 약속받지 못한 암담한 인생들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잿빛인생 속에 대학원생이 끼어 있는 것이 특히 마음 +아프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이 낡은 책보따리를 끼고 돌아다니는 60년대의 대학원생들은 그렇게 공부를 하더라도 졸업 후에 갈 길은 배고픈 실업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70년대 후반기부터 세상은 달라졌다. 그렇게 측은했던 60년대의 대학원생들 다수가 오늘의 교수가 되었고 자살한 그 사내도 자살을 +보류했더라면 지금쫌 고급 승용차를 몰고다니며 노후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서울 1964년 겨울」의 대힉원생이 그렇듯이 '1998년 겨울'인 지금의 저주받은 학번들도 시간이 흐르면 아마도 그렇게 달라지리라는 것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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