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 칼럼」- 저주받은 학번
「김우종 칼럼」- 저주받은 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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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1.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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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망했군. 일년만 빨랐어도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터인데"

지난번에 졸업한 학생들은 분하고 억울해서 이런 말들을 했다. 왜냐면 단 +1년 후배라는 것 때문에 93학번과 94학번의 운명은 천당과 지옥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94학번이 모두 98년도에 졸업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금년 졸업생과 작년 졸업생을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말일뿐이다.

사실로 INF의 날벼락을 맞고 취업도 못해본 금년 졸업생들에게는 작년 졸업생들이 너무도 부러을 것이다. 취업자와 실직자의 운명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니까. 이렇게 취업도 못해본 대부분의 이 나라 선비들은 앞으로 +언제까지 그런 실의와 낙담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런데 예전에 취업을 못했거나 하지 않고 가난하계 살았던 선비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있다, 윤선도라면 조선시대에 누구보다도 탁월한 +명작들을 남긴 시인으로서 우리 국문학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송강 정철이 남긴 가사문학의 업적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명필가로서 남긴 업적도 그렇다. 또 실학파로서'목민심서' 등 5백권의 크고 작은 저술을 해나간 다산 정약용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타의에 의한 실직자였지만 그렇게 놀고 먹는 신세가 되지 않았다면 어찌 그들의 이름이 그토록 찬란하게 역사에 남을 수 +있었으랴! 그들도 아마 대개는 자신들의 불운을 탄식했을 것이다. 관직에서 밀려나고 아득히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거나 낙향해서 한가한 +세월만 보내게 되었을 때는 그들도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탄식했을지도 모른다.

정약용은 너무 일찍이 형제들과 천도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죽을 고비를 겪게 되었다. 그가 만일 좀더 늦게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면 아무런 탄압도 안 받고 근대화에 앞장서는 지도자로서 높은 관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것은 금년 졸업생과 작년 졸업생의 경우처럼 시간의 운을 잘못 타고 난 것뿐이다.

그렇다면 금년 졸업생, 또는 다음 졸업생들이 그렇게 '저주받은 학번'이 되었다는 것을 무조건 탄식만 할 일은 아니다.

과거의 선비들이 그랬듯이 뛰어난 인물들이라면 실직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남의 회사에서 월급이나 받아먹는 것보다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을 스스로 찾을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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