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개 HK연구소 인사규정 살펴보니 … 10년간 국비 지원 받고도 학문후속세대 양성 '외면'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인문학 연구소를 육성하고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이 시행 8년차를 맞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11일 본지가 대학에서 운영 중인 43개 연구소의 HK인사규정을 조사한 결과 HK교수에게 전임교원에 비해 과도한 업적평가기준을 요구하거나 급여를 차별하고, 재임용심사 탈락시 재도전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차별조항이 여전했다. 일부 대학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HK교수의 급여를 지불하기 위한 예산확보 계획을 연구소에 요구하는 규정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국연구재단이 2007년부터 시행한 HK사업은 대학 내 인문학 연구소를 선정해 10년간 세금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학은 최대 150억원에 달하는 국비를 지원받아 규모별로 10명 이내의 HK교수를 선발해야 한다. 대학은 이들을 10년 동안 전임교원으로 대우할 뿐만 아니라 지원기간 10년이 종료된 뒤 한국연구재단이 지급하던 인건비를 개별 대학이 부담하게 돼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재단은 연구소 중심의 인문학 연구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연구소 소속의 교수직을 신설해 인문학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2007년부터 연구소 선정을 시작해 오는 2017년이 되면 서울대와 고려대 등 최초 선정된 연구소들의 지원기간이 종료된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대학에선 HK교수를 학과 전임교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받아들이는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해당 대학들은 임금에 차별을 두거나 복지혜택을 제한하는 등 소극적인 방식으로 HK교수를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회대는 재임용 및 직급승진임용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재심사나 기간연장을 하지 않는다. 통상 6개월에 1회 가량 재임용심사를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과 다르다. 이 같은 조항은 처우와 평가기준에서의 차별은 아니지만 제도적으로 전임교원과 HK교수를 구분하는 효과가 있다.

연세대의 HK인사규정은 보다 직접적이다. 연세대는 HK운영에 대한 특별규정을 마련해 HK교수의 임용계획과 이를 뒷받침할 예산확보계획서를 연구소장이 대학에 제출하도록 했다. 한국연구재단이 HK연구소의 운영비용에 관련된 책임주체를 소속대학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연구소가 주체가 되는 셈이다.

HK교수에 대한 연구업적평가기준도 문제다. 일부 대학은 HK교수에게 학과 전임교원에 비해 많게는 3배에서 적게는 1.5배에 달하는 연구업적을 요구하고 있다. HK교수는 학과 전임교원와 달리 책임강의시수가 없는 연구전담인력이기 때문에 학과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교육의 부담만큼 연구업적을 상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HK약정서에 따르면 이들 교수는 전임교원과 동등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강의를 면제받고 있다. 연구소 전임이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위해 3시간에 한해 대학 강의를 맡을 수 있도록 허용됐다.

연구재단 측은 HK교수의 연구업적을 상향해 평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그 기준이 달성가능한 범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부 대학이 달성불가능한 수준의 연구업적을 요구해 이에 대한 시정요구를 수차례 하달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는 서강대가 이 같은 연구재단의 지적에 따라 업적평가기준을 조정한 바 있다.

최근에는 연구전담교수나 산학협력교수 등도 전임교원에 포함되면서 HK교수의 처우와 평가를 이들에 맞춰 설정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법적으로 전임교원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학과 전임교원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더라도 시정을 요구할 명분이 크지 않은 맹점을 노린 것이다.

이 같은 ‘꼼수’가 만연하자 연구재단은 5월 내 대대적인 실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2~3개 대학에 대한 강도 높은 실사를 통해 HK사업의 당초 목적인 인문학 연구소 육성과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마무리 하고 최근 논의되는 HK 후속사업을 제 궤도에 올리겠다는 목표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HK교수를 학과 전임교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임용하는 것은 각 대학이 HK사업을 수주할 때 이미 합의가 됐던 부분이다. 이행을 미루거나 졸속으로 진행할 경우 사업의 정상화를 위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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