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경칩이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다가왔으니 개구리가 기지개를 펴고땅 속에서 기어 나올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오래간만에 눈부신 바깥 세계로 얼굴을 내미는 계절이라고 해도 경칩이 그렇게 따뜻한 계절은 아니다. 따뜻하기는커녕 꽃샘바람과 함께 +이미 녹았던 땅마저 꽁꽁 얼어붙고 겨우내 무사했던 간장독마저 동파시키기 쉬운 것이 경칩 추위다. 그러니까 개구리가 기지개를 펴고 땅 +속에서 기어 나오는 계절이라는 한반도에서의 풀이는 대개 맞지 않는다. 오히려 밖으로 나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때다. 이런 개구리로 하여금 기겁을 해서 다시 웅크리게 만드는 것이 경칩일 것이다.

예전에는 경칩이 되면 아주머니들이 냇가 양지바른 곳이나 논두렁으로 찾아가서 땅 속을 후벼파며 개구리를 찾아내기도 했다. 개구리에게 +봄소식을 전해주며 그들을 억지로 깨워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붙어있는 입을 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도와주면 한해동안의 액땜도 되고 소원 성취도 된단다. 그래서 아들 못 낳은 아낙네들이 그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다녀와서 동상에 걸려 고생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금년에는 벌써 한달 전에 개구리가 나왔단다. 사람들이 모두 정력제라고 씨를 말리며 잡아가서 한여름에도 구경하기 어렵던 개구리가 벌써 한달 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상 고온현상 탓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경칩날 억지로 끌려나온 개구리와 비슷해졌다. 땅 속의 개구리이고 우물안 개구리였는데 IMF가 우리를 흔들어 깨워서 저 넓은 바깥 세상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개방하고 전세계의 누구라도 이 땅에 와서 마음대로 돈 벌며 땅주인이 되고 은행장이 되고 신문사장이 되고 대기업의 주인이 되니 우리는 아직 눈곱도 떼지 않고 입도 붙어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넓은 세계로 끌려나온 개구리가 된 것이다.

편하게 허세 부리며 살던 시절은 끝나버린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타의에 의해서 넓은 세상으로 끌려나온 개구리라면 그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선진국을 향한 도약을 위해서라면 어차피 우리는 땅 속이나 우물 안에 있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뛰쳐나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통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 될 수도 있다. 개구리도 뛰려면 먼저 움츠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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