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운동경기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그냥 취미 정도가 아니라 강한 애 국심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응원석은 항상 태극기로 물결을 이룬다.

이런 애국적 스포츠 열풍이 가장 세게 몰아친 것은 한일간의 축구경기일 것이다. 지난번 일본에서 벌어진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참패시켰다는 것은 경제위기로 나라가 휘청거리고 실업자들이 급증하는 이 계절의 우울한 분위기를 한꺼번에 잊게 만드는 대단한위력을 지닌 듯했다.

그러더니 다음번 잠실운동장에서는 우리가 참패를 당했다. 전반전 3분만에 한 골을 먹고 또다시 37분만에 한골을 먹으며 참패로 끝나자 온 나라가 시끄러울 만큼 선수들에 대한 비 난이 쏟아졌다. 하루아침에 영웅들이 역적으로 전락하는 꼴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온 나라가 승리를 기뻐하고 패배에 울분을 터뜨린다는 것은 얼마나 애국적인 것인가?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다. 해방후 지금까지 우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한테 패배 해왔다. 과학기술이 그렇고 인문 사회과학 연구도 그렇고 문화인으로서의 예의범절 수준이 그렇고, 준법정신이 그렇고, 인간 상호간의 신뢰도가 그렇고, 경제발전이 그렇고, 군사력도 그렇다. 일본으로 구경간 사람들도 한때 일본의 코끼리밥통과 카메라는 물론이고 바늘과 똥 뒷간 청소막대기까지 사오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온갖 분야에서 일본에 패배한 국민이 되고서도 웬일인지 부끄러움 도 모르고 반세기를 살아왔다. 식민지시대의 억울함마저도 잊은 것일까?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일본에 비해서 우리 국민의 약점을 지적하고 일본인의 장 점을 말하면 대번에 분노를 사고 이쪽은 친일파가 되어 버린다. 식민지시대의 잔재니 뭐니 하며 매국노로 몰아버릴 기세다. 그래서『일본은 없다』라는 책도 잘 팔리나보다. 그러나 그 것은 눈먼 애국심이 아닌가?

한일경기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여기 나타나는 애국심도 그처럼 문제가 있다. 이기면 물 론 좋지만 10대 빵으로 지더라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다른 대부분의 분야에 서의 패배는 결국 국가 존망의 문제와 닿는다. 지금의 나라꼴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그런 데도 그런 분야에서의 패배에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애국심은 운동장에서만 발동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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