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전문가 "두가지 모두 공공이슈 … 대안제시 곤혹스러워"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대학 기숙사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논리가 진화하고 있다. ‘원룸이 텅텅 빈다’며 사적이익을 노골화했던 임대업자들은 최근 이화여대와 고려대의 학생기숙사 신축국면에서 ‘환경’을 새로운 반대이슈로 상정했다. 이화여대는 대학과 서대문구의 강한 의지로 사업이 재추진되는 모양새지만 고려대는 구청과 구의회의 적극적인 반대로 첫삽조차 뜨지 못했다.

지난 11일 고려대 총학생회는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북구청과 구의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고려대는 지난 2013년 개운산 근린공원 내에 1100명 규모의 기숙사를 신축하기로 하고 구청에 공원계획변경을 신청했다. 이에 인근 원룸임대업자들로 구성된 개운산사랑연합회는 고려대의 신축 기숙사가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의 여가권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고려대의 학생 기숙사 수용률은 11%에 머물고 있다. 서울권 대학 평균 기숙사 수용률 14.17%보다 낮은 수치다. 기숙사에 입주하지 못한 학생은 월평균 42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1418만원 상당의 임대보증금을 요구하는 인근 원룸에 거주하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총학생회는 “개운산사랑연합회는 맹목적인 반대를 지양하고 학국, 총학생회와 대화에 나서달라”며 “주민들의 요구와 대학생의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가 기숙사를 신축하려는 개운산 근린공원은 1996년 성북구청에서 수립한 개운산 근린공원 조성계획의 적용을 받는 곳이다. 고려대가 소유권을 갖고 있지만 기숙사를 짓는 등 용도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성북구청의 자문을 거쳐 서울시 도시공원시심의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고려대는 2013년 기숙사 신축계획을 발표한 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공청회를 진행하는 등 설득작업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기숙사가 신축되면 근린공원 내 테니스장 등 주민여가시설을 조성해 개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성북구청과 의회는 지역주민의 찬성 없이는 기숙사 신축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성북구의회는 고려대에 기숙사 건립 추진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개운산사랑연합회는 “개운산은 성북구의 허파다. 이 곳에 기숙사를 짓는다는 것은 대학을 위해 지역환경을 일방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대학의 기숙사 신축이 환경을 훼손한다는 저항은 고려대가 처음이 아니다. 이화여대 역시 학교부지인 북아현숲 1만여㎡부지에 2344명 규모의 기숙사를 짓기로 하고 지난해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서울시 관계자와 역대 총장들이 함께 모여 착공식을 진행하는 등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곧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당초 인근 연세대의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며 ‘지역경제 붕괴’를 주장하던 지역주민들은 이화여대가 북아현숲에서 벌목을 진행하자 ‘환경을 훼손한다’며 의제를 변경했다. 특히 북아현숲이 당초 비오톱 1등급지역으로 건축허가가 날 수 없으나 서울시가 이대 기숙사 신축을 위해 2등급으로 하향조정시켜줬다며 특혜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학생 주거권과 환경문제가 공공연하게 대립하자 환경문제 전문가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대학생의 주거권이라는 시급한 현안과 개발을 위한 환경훼손이라는 지적이 공존하고 있다. 당장은 당사자들의 합리적인 소통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세훈 고려대 총학생회 사회연대국장은 “지역환경훼손을 염려하는 목소리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원룸 주거비가 대학생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임대업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환경문제로 덮으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솔직하게 대화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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