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이주민’ 등 주변인 대상 인문학 대중강연 ‘힐링’

인문학자, 대중강연 열고 인문학 가치 ‘여민동락’ 강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

-윤동주 '서시'

[한국대학신문 석지헌 학생기자] 지난해 9월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윤동주의 ‘서시’를 들려줬다. 윤동주의 서시는 맹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시다. 호연지기(浩然之氣), 수오지심(羞惡之心), 측은지심(惻隱之心) 등이 내재돼 있다.

김 교수는 “맹자는 사람이 부끄러움이 없어서는 안된다.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것이 의로움의 단서”라고 강의했다. 인간은 누구나 수오지심을 갖고 있고 이는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은 윤동주의 인생관을 압축한 말이기도 하다.

학기 중 대학을 벗어나 인문학 강의를 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김 교수는 새터민과 이주노동자, 이주결혼자, 노숙인, 이주결혼자의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학기 중 인문학 대중강좌를 열고 있다. 지난해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민들레 문학교실을 진행했고, 여수의 성매매체험자들을 대상으로도 강의했다. 최근에는 새터민을 대상으로한 인문학강좌도 열었다. 이들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는 의미에서 ‘주변인(The marginalized)’이라고도 불린다.

김 교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강조했다. 더불어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곧 인문학 정신이라는 이야기다. 여민동락이 없는 사회는 삭막하고, 소수자는 더욱 고립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인문학 지식을 축적하기만 하고 나누지 않는 것을 경계했다.

인문학자들의 대중강연은 인문학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달 4일 김수영문학관 4층강당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시인 윤동주, 우애의 넓이에 대하여’를 강의했다. ‘김수영문학관이 주최한 ’한국 현대시 산책‘의 첫 강의다. 김 교수 외에도 고봉준 경희대 교수 등 문화평론가를 비롯해 시인인 이민호 서울과기대 교수, 역시 시인인 임동확 한신대 교수 등 8명이 김수영의 삶과 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이들의 강연은 실제로 ‘주변인’의 삶을 바꿨다. 한때 노숙인으로 생활하던 이모씨(45)는 김 교수의 민들레 문학교실에서 강연을 들으며 노숙자 생활을 벗어났다. 한때 이씨는 양평의 한 쉼터에서 머물며 자동차회사에서 시트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나 쉼터에서 왔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따돌림을 받아 결국 견디지 못하고 관뒀다. 이씨가 김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2년이다. 당시 이씨는 서툴게 쓴 원고를 한구절씩 물어보고 수정해준 김 교수를 잊지 못한다.

1년 뒤인 2013년 이씨의 글을 포함한 노숙인 15명의 글은 민들레 예술문학상 기념문집으로 출간됐다. 이씨는 현재 작가로 등단하기 위해 새로운 문학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이씨는 “당시 김 교수는 노숙인의 인격을 존중해줬다. 덕분에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됐고 내재됐던 결핍을 치유할 수 있었다. 문학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고 회상했다.

최근 인문학 대중강연은 활성화되고 있지만 인문학도와 인문학과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려는 시도가 대학 곳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딱히 취업처가 없는 인문학과는 예체능 학과와 함께 ‘폐과 1순위’로 꼽힌다. 김 교수는 “우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찾고 득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져버린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무척 공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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