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문 부실 우려, 약대 특성화학과 "3·4학년 없다"

PEET 지원자수 2011년 이후 4년만에 52% 증가

[한국대학신문 김소연 기자·지민경 학생기자] 이공계를 나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약학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다. 안정적인 전문직에 취업하기 위해 약대로 인재가 몰리다보니 대학은 몸살을 앓고 있다. 화학·물리·생물학과 학생들이 약대에 진학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이 기초학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의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면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 전문직 좇아…약대 가기 위해 재수·삼수 불사 = 지난 2009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現 교육부)는 약대의 교육과정을 4년에서 개방형 6년제 과정으로 개편했다. 약대 지망생은 먼저 일반학부에서 2년간 기초소양과목을 이수한 뒤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을 거쳐 약대에 입학해 이후 4년간 전공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이른바 ‘개방형 2+4’ 약대는 2011년부터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 지원자 현황 (출처:한국약학교육협의회)

PEET에 지원하는 지원자 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1학년도 지원자 1만 47명에서 2015학년도 지원자 수는 1만 5592명으로 약 52% 증가했다.

약학대학에 진학해 약사나 신약연구자 등 전문직으로 일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PEET 경쟁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지원자 수가 늘고 있지만 4년제 대학 졸업 후에도 약학대학을 다시 진학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2011학년도 26세 이상 지원자 수가 4078명에서 2015학년도에는 5303명으로 30% 넘게 늘었다.

한양대 이공계학과를 졸업한 한 학생은 “이공계가 모두 취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 관련 학과는 박사학위까지 취득을 해야만 미래가 보인다”면서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를 했지만 결국 다시 약학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해 PEET 공부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안정적인 직업인 약사에 대한 선호가 경쟁률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동국대 의생명공학과 4학년인 A씨는 “약학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하면 취업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제약회사, 병원, 약국 등으로 갈 수 있다. 특히 여자는 임신이나 출산 등으로 ‘경력단절여성(경단녀)’가 됐더라도 재취업이 쉽다”고 약학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의사, 약사 등 ‘타이틀’이 중요하지 않은가. 약대에 입학하면 의대, 법대에 입학한 것처럼 사회적 인식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관련 학과 황폐화…3·4학년 없어 폐강도 속출 = 지난 5년간 대학가에는 약학대학·의학전문대학원·치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학과들이 속속 생겨났다. 약대·의전원·치전원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덕성여대 Pre-Pharm·Med학과 △삼육대 의약과학과 △경희대 약과학과 등은 관련 특성화학과로 유명했다. 약대가 아닌 의전원·치전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해당학과에서 4년을 마치고 MEET·DEET 등 진학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부 교육정책의 변화에 따라 의전원과 의대 병행하던 대학들 대부분이 의전원에서 의대로 전환하게 되면서 관련 특성화학과들은 약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만 남게 됐다. 올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11개교가 의대로 전환했고 2017학년도에도 11개 대학이 의대로 복귀해 의전원은 강원대, 건국대, 동국대, 제주대, 차의과학대 5곳만 남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약대·의전원·치전원 진학을 목표로 한 특성화학과들은 흔들리고 있다. 삼육대 기초의약과학과는 2015학년도부터 관련학과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박두한 삼육대 교수(기초의약과학과)는 “우리 학과에서 4년을 마치고 의전원을 진학하는 학생보다 2년 수료하고 약대를 가는 학생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우리 학과가 약대를 가기 위한 2년제 학과처럼 변질이 됐다”면서 “3·4학년 강의는 최소 개설인원을 맞추지 못하는 등 폐강이 속출했다. 정상적인 학과운영이 힘들어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약학대학 진학에 몰두하는 사이 대학가 이공계 기초학문은 황폐화되고 있다. PEET 시험이 화학추론(일반화학·유기화학), 물리추론, 생물추론 4과목으로 구성되다보니 관련 학과인 화학·물리·생물학과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약대를 진학을 위한 PEET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관련학과 중도탈락률은 해당 대학 평균을 상회한다. 2013년을 기준으로 대학알리미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덕성여대는 중도탈락률이 3.2%지만 Pre-Pharm·Med학과 중도탈락률이 9.4%에 이른다. 같은 대학 화학과 중도탈락률은 5.4%였다.

서울에 위치한 모 대학 화학과 B씨는 “약대를 준비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럴 거면 애초에 왜 우리 학과에 입학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동국대 의생명공학과 A씨도 “학과 내에 3~4학년이나 졸업생이 없다”면서 “휴학 후 학교에 돌아오지 않는 PEET 재수생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약대로 인재들이 빠지다보니 대학 현장에는 정상적인 수업마저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초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할 인재가 부족한 형국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는 “화학과에 2학년까지 학생들이 꽤 많지만 3학년이 되면서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빠져나간다. 이렇게 되면 학과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라면서 “화학과가 약대에 신입생을 공급해주기 위해 교육하는 학과인가”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박두한 교수도 “개방형 2+4 약대 체제에 대한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 화학, 생물학 등 이공계 기초과학이 황폐화되고 있다”면서 “좋은 대학일수록 학생들이 약대를 준비하기 위해 학과에 들어와 2년만 공부하다가 다 빠진다. 그러면 이 자리를 다른 학교 학생들이 편입해 메우게 된다. 결국 대학교육 현장에 연쇄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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