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본지 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

우리나라는 세계 최하위의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경제규모 14위의 성공적인 국가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자본과 자원이 부족하였던 초창기에는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금융을 지배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기업과 개인의 자발적인 경제활동에 의하여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교육 분야는 위와 같은 발전 단계에 미치지 못해 아직도 정부가 개입하고 교육계를 관리하려고 하는 후진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대학입시의 종류와 방법은 교육부가 정한 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고등학교 교육은 교육자들의 교육 철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에 적응하는 형태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대입 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등학교 교육이 획일화되었다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것도 모자라 대학교육까지 획일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대학평가와 재정지원을 연계하고, 저조한 평가를 받은 대학을 퇴출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교육은 교육부의 평가기준에 따라 획일화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대학에 따라서는 학과의 취업률이 개별 교수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것은 교수의 연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에 취업률이 중요한 지표로 자리했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다.

교육부는 시장의 수요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공무원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점을 깨닫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등 교사 채용이 줄어들자 사범대 입학성적과 경쟁률이 하락한다거나 주요 대기업이 이공계를 선호하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서도 이공계의 인기가 상승한다거나 하는 것만 보더라도 교육 수요자들은 정부보다 훨씬 신속하게 시장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교육 수요가 변동되면 대학도 그에 맞추어 변신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을 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앞으로 학령인구가 급속히 감소되기 때문에 그러한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대학을 퇴출시키는 일은 굳이 교육부가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여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 국가 권력에 의한 대학 퇴출은 분쟁과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교육부가 이제 와서 대학 퇴출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인구 변화를 예상하여 대학의 난립을 막는 정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교육부는 어떤 정책을 수립하여야 하는가? 대학 퇴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시장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이 교육부가 해야할 일이다. 예를 들어 퇴출된 대학의 교수와 학생은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지방대학의 수가 대폭 감소된다면 지방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를 고민하여야 한다. 그것은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일이고,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정부와 정치권은 시장이 할 일을 정부의 역할로 오인하고 있고, 정작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망각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일도 있었다. 국회에서는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을 위한 법률안'을 제안했고, 그 중에는 학교법인의 재산을 설립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한다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퇴출 사립대의 설립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어 공익적 목적에도 반하고 시장의 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그러한 독소조항을 삭제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에 머무르지 말고 더 나아가 교육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재고하여 제대로된 정책을 수립하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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