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진보세력들이 등장하면서 진보시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선 성장과 분배가 어떻고 비정규직과 근로자들의 복지향상이 어때야 한다며 진보적인 정책토론들을 주고받는다. 대학가 구성원들에게도 ‘진보’는 좋은 화제요 안주거리가 됐다. 그러나 인기상한가를 올리고 있는 진보시대에 우리는 과연 ‘진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진보가 서민과 사회약자들을 위한 정치색채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지만 정작 하루를 일해 하루를 먹고사는 서민들의 삶 속에선 이 모두가 공허하고 아득한 이야기일 뿐이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면서도 휴가일수는 연4일, 오전5시부터 오후4시까지 하루11시간을 일해야 하며, 월3백시간, 연3천6백 시간을 근무해야 하는 대학 청소용역직. 그러나 그 대가는 월54만원. 이는 하루 3번 대학건물 전체를 청소하고 계단밑 0.7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잠시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성균관대 법대건물 청소용역직 김옥순(64), 김백예(67) 님의 이야기다.
최근 대학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청소업무 등을 용역회사에 맡기면서부터 청소용역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청년실업자수가 80만에 이르고, 그나마 취업한 젊은이들 다수가 임시, 계약, 인턴직이 전부라는 요즘 상황에 나이 잡수신 분들 근로환경까지 걱정해야 하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진보시대’에 기대를 걸고 대학가 많은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진보’에 있다면, 그리고 ‘진보’라는 것이 인권, 분배, 평등, 상생, 복지향상 등을 말하는 것이라면, 고된 일에 종사하는 이러한 분들의 복지와 인권, 그리고 그 근로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와 학문 속에서만 거론되는 ‘진보’가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온정’과 ‘배려’야말로 살아있는 진보의 덕목일 것이다. 교수들이 연구비 부족을 탓하고 연구실 에어컨 설치를 요구할 때, 학생들이 등록금문제를 거론하고 최신식 학습공간을 요구할 때, 우리는 그런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청소용역직 종사자들의 애환도 함께 이야기해야 옳다고 본다.
강의실과 화장실을 어지럽게 사용하고 복도에 무심코 가래를 뱉으면서도, 우리는 진보를 말하는 것을 흥미로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진보’를 말하고 싶다면 그것은 의외로 가까이에 존재하고 소박한 것이며 정겨운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강의실에서부터 화장실까지 쓸고 닦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의 청소용역직 어머님들. 그분들께 어떤 동정을 보내자 거나, 3D업 종사자들의 임금과 복지 향상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직업귀천에 대한 인식재고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듬직하고 야무진 우리 학생들이 깨끗한 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말씀하시는 김백예 어머님의 환한 웃음 속에서,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실천되고 있는 ‘진보’를 찾아보라는 의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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