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스승은 세상의 이익이 아니라 이치를 가르치는 것

“역사를 보면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살벌해지더라도 옳은 것 맑은 것 아름다운 것을 추구했던 꿈꾸는 리얼리스트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꿈꾸는 법, 그리고 사람냄새를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하교수는 서울대와 동대학원을 전체수석으로 졸업하고 30세 초반 교수로 임용된 후 지금까지 성균관대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역사학회, 동양사학회 등 유수의 학술단체에서 혁혁한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하원수교수는 권위와 공명, 잇속 다툼과는 거리가 먼 평범하고 소박한 인문주의자로만 기억되길 바란다. 최근 졸업한 제자들에 의해 ‘진정한 스승상’으로 선정되기도 한 그를 만났다. “진정한 스승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아직 더 배우고 깨지고 부딪혀야하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를 기억해 주는 제자들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참 스승으로 기억하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역사라는 것이 인간과 문명, 창조와 기록, 생성과 소멸, 번영과 쇠퇴 등 광활한 지식을 배우는 학문아닙니까? 그 안에서 우리는 정치며 사회며 경제 혹은 많은 담론들을 만나게 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 자신의 역사는 어떻게 위치해 있고 또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중요합니다. 제자들에게 그런 문제들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만는 것이 이유가 된 듯 싶습니다.” 평소 하교수는 제자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인문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인문정신이란 인간과 문명을 자연과 공존하며 청명하게 가꿔가는 마음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사람과 사람이 교류할 때 인문정신이 깃든 교류는 향기가 나고 오래 가는 법이라고 할 때, 약자를 배려하고 보듬어 안는 마음, 풀꽃하나와 문명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그리는 마음, 그것들이 모두 인문정신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선생은 합리적인 사람, 다시 말해서 이익이 아닌 이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또 교육전략이라는 말도 있는 줄로 압니다만 그래도 교육은 좀 보리밭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선생은 권위나 방대한 지식보다는 제자들에게 먼저 항상 성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지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성실히 교육에 임하다 보면 제자들과 신뢰도 생기고 결과도 행복하게 나타납니다.” 사제지간은 서로 믿고 따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와 도구적인 가르침만을 전하는 스승이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교육은 낭만주의가 아니라고 지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세상과 현실이 너무 각박하니 해독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지식 외에도 온정과 인문정신을 함께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제자들의 경우엔 반드시 제도권 내 선생들에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지식을 주고 삶의 지혜를 주는 ‘스승’은 많습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스승을 찾는 것, 제자들이 그런 겸허한 ‘사숙’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원수 교수는 제자들이 자장면을 먹고 난 후 그릇을 직접 씻어놓는 교수로도 유명하다. “연구실에 음식배달을 해주던 스무살을 좀 넘은 듯한 젊은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자기 또래인 대학생들을 너무나 부럽게 바라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눈빛이 제게 보이더군요. 보시는 것처럼 저는 다리에 큰 장애가 있습니다. 이 장애는 감출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보이지 않아 도와줄 수 없는 아픈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뭔가 아픔이나 마음안의 장애가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 때문인지 그저 한없이 미안하고 또 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마 자장면 그릇에 손이 가기도 한 모양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장애까지 사랑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자장면 그릇을 씻게 되었다는 하 교수. 아마도 사제지간도 점점 더 계산적으로 변해가는 요즘 세태에 던져 주고 싶은 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작고하신 서울대 민두기 교수님을 참 많이 존경했습니다. 학계에선 신화같은 인물이시지만 인품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셨습니다. 당신께서 제가 처음 시간강사로 강단에 나갈 때 당부해 주셨던 말씀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실한 가르침이 더욱 중요하다’는 평범한 조언이셨지만 그 가르침의 무게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역사학 교수답게 ‘이문회지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이라는 고사성어 헌 구절을 자주 들려준다고 한다. 해석하면 ‘문으로서 친구를 만나고 친구로서 인을 돕는다’ 인문을 사랑하고 그것으로서 사람들과 사귀어 가고 또 좋은 사람들과 벗하면서 인성을 아름답게 보충해 가는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이 담겨 있다. “맹물을 마시기보다는 찻잎이라도 넣어 물에도 향기가 나도록 하려는 마음 한잎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깊은 ‘겸손과 겸허’를 품어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하는 그의 말은 단순히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주는 제언이 아니라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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