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욱(본지 논설위원/단국대 교수/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집행위원장)

한참 전의 일이다. 운동선수치곤 꽤 다소곳한 한 여고생이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대다수의 대학에서 체육계열의 수시 입학생은 중고등학교 재학 중 전국대회 입상 실적을 갖춘 학생들이다. 소위 체육특기자인 셈이다. 그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에 취업을 했다가 1년 만에 실업 선수를 포기하고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 여고 학생선수가 실업팀으로 드어가는 경우는 종목에 관계없이 그 기량이 상당히 우수한 학생에 한해서가능한 것이었다. 지도교수로서 나는 운동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대학생으로서 그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가졌고 특히 전국대회 상위 입상을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갈 때까지 다른 동료 학생선수들과 달리 대회 참가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아예 대한체육회에 선수등록을 하지 않고 있었다. 면담을 해보니 이전에 소속돼 있던 실업팀이 이적동의서를 발급해주지 않아서 선수 등록을 못했다고 내게 미안해했다. 내심 의아하고 화도 좀 났지만 뭔가 괘씸죄에 걸려 이전 실업팀이 이적동의서를 발부해주지 않는가보다 하고만 생각했다. 대한체육회의 이적동의서 제도는 생각보다 무섭고 무겁다. 선수들의 무분별한 소속팀 이적으로 인한 스포츠계의 혼란을 방지하고 건전한 질서를 유지하는 순기능을 지니고 있으나 이적동의서는 선수와 지도자, 선수와 조직 간 갈등이 심각하여 팀을 이적할 경우 선수에게는 삽시간에 노예문서로 전락한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내게 말 못할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은 한참 후 동료 학생들이 그가 1년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대학을 자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그가 대학을 그만둔 사연을 전해주었다. 
 
실업팀에 있을 당시 그는 코치로부터 수없이 성폭행을 당했는데 코치를 피해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그 코치는 대학을 포기하고 실업팀으로 복귀하라고 집요하게 구슬렸다고 한다. 말을 듣지 않자 코치는 당연히 이적동의서를 발부하지 않았고 그는 그런 사실이 대학 내에 소문이 날까봐 1년을 버티다 자퇴를 하고 만 것이었다. 코치는 이후에 국가대표 코치로 발탁되어 한동안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다. 충격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자괴감이 일었다. 왜 선수등록을 하지 않느냐 느니 학교생활에 좀 더 최선을 다하라든지 하며 영혼 없이 던진 모든 말들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당시에는 성폭행이 친고죄여서 아무리 화가 났어도 주변 사람들이 해당 코치를 고발할 수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학생의 미래를 생각하면 함부로 발설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전해들은 얘기가 모두는 아니겠지만 정년을 몇 년 앞둔 지금도 그 학생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코치에 대한 분노감은 가슴 깊이 남아있다. 
 
어려서부터 운동했던 선수들이 프로나 실업팀에 진출하는 경우는 종목에 관계없이 전체 운동선수들 중 5% 이내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미국 NBA의 경우도 미국 전체 농구선수의 1% 미만의 선수들만이 그 바닥에 선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미국의 정신 제대로 박힌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학과 공부나 교양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상이나 기량 부족, 지도자와의 갈등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학생선수들은 운동장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그 학생처럼 상처를 가득 안은 채 운동장을 떠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운동했던 경험이 한 젊은이의 인생에 고약한 기억으로 남으면 되겠는가. 우리 사회가 점차 정화되는 가운데 유독 끊이지 않는 스포츠계 일탈을 보며 스포츠계의 도덕 재무장 운동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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