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정책 문제… 정부 가이드라인 안 따르면 불이익

사립대학 절반이 전체 운영수입의 70%를 등록금에 의존
기업 유치는 일부대학에나 가능… 수익사업 규제 풀어야

▲ 우리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총장들의 인식은 매우 비관적이다.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처럼 자율성 없어서는 미래가 어둡다는 암울한 진단도 쏟아졌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이우희·김소연 기자]"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헌법 제31조 제4항)." 헌법이 우리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학의 자율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들이 나온다. 대학의 자율성 확대는 역대 정부마다 매번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다. 지난 MB정부는 대학입시에의 자율권을 강조해 대학마다 다양한 입시전형을 운영하도록 허용했지만 대학등록금 규제, 대학 거버넌스 규제 등은 오히려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정부도 대학은 물론 사회전반의 규제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실제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자율성을 잃어버린 우리 대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 “획일적 대학규제, 사회주의국가보다 더해” = 우리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총장들의 인식은 매우 비관적이다.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처럼 자율성 없어서는 미래가 어둡다는 암울한 진단도 쏟아졌다.

지방 H대 총장은 “정부가 획일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대학에 불이익을 주는 식의 대학규제는 흡사 사회주의 국가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다른 나라와 비할 것도 없이, 최근의 대학규제는 우리 과거에 비해서도 훨씬 심하다”며 “단적인 예가 등록금인데 6년째 한 번도 인상을 못하고 일부는 눈치를 봐가며 인하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자율성은 이미 사치가 되어버렸다는 푸념도 나온다. 또다른 지방 C사립대 총장은 “자율성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대학과는 거리가 먼 단어가 돼버렸다”면서 “입시만 하더라도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대학들은 이에 맞춰 입시안을 짜서 보고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입시가 끝난 뒤에는 또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검사를 받는다. 국립대나 사립대나 할 것 없이 대학의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고 토로했다.

대학이 교육부의 눈치를 보는 현실도 씁쓸하다. 또다른 H대 총장은 “십여년 전만 해도 대교협에서 교육부장관을 만나 이야기 하면 총장들이 쓴소리도 하고 그랬다. 요새는 눈치나 보고 어려운 말은 꺼내지도 않으려 스스로 피하는 것이 현실이다”고 전했다.

정부 규제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생존모색까지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K대 총장은 “우리 대학은 수도권 거점 마련을 추진하는데 실제 이 부분에 교비를 쓸 수 있는 길이 규제로 막혀 있다. 지방대가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은 각종 규제로 제약이 큰 반면 서울권 대학이 수도권이나 지방에 캠퍼스를 설립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손쉽다. 대학이 서울에 있다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시장 자체가 왜곡돼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의 특성화사업이나 프라임사업도 결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획일적으로 맞추라는 새로운 규제라는 지적이다. K대 총장은 “특성화사업도 사실 정부에서 '이런이런 방향이 특성화'라고 정하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지, 대학이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프라임사업도 ‘산업수요에 맞춰라’는 것이 기본 아닌가. 경우에 따라서는 자율적으로 시장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근간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사립대가 자율적으로 다양하게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H대 총장은 “대학을 평가해서 자원을 배분할 때 평가라는 게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이해하지만, 획일적인 지표로 한 줄로 줄세우는 것은 문제”라면서 “대학의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대학경영자는 중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운영할 여지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말했다.

■ 우리 사립대, 등록금 의존도 심각…“한계 뚜렷” = 대학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한국 대학에서 ‘자율성’은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인상 규제 등으로 인해 대학들은 재정 확대를 위한 타개책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그마저도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려워 ‘대학의 위기’는 현실로 다가와 있다.

지난 5월 대학교육연구소가 공개한 '2009~2013년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율 현황'에 따르면 155개 대학 가운데 절반가량인 76개(49%) 대학이 전체 운영수입 중 70% 이상을 등록금으로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등록금 의존율은 65.2%였다. 이처럼 대학들이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만 의존하다보니 등록금 수입 감소는 대학 재정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 K대 총장은 “기본적으로 재정적으로 넉넉한 대학일수록 자율성이 높다”면서 “현실적으로 사립대학이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방법은 대기업과 손을 잡거나 기부금 유치, 등록금 증액, 수익사업 참여 등이다. 이 중 대기업이 법인으로 참여하거나 기부금을 유치하는 것은 유력 사립대학이나 가능한 일이고 결국 등록금이나 수익사업인데 이걸 마음대로 못하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합의로 수년째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정책은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 C대 총장은 “정치적인 ‘표’를 계산해서 대학의 등록금을 묶어놓는 것은, 대학의 경제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재정이 열악하니 정부의 눈치를 보게되고 자율성은 더욱 악화된다. 풍부함 속에서 도전과 창의가 나오는 것인데 이대로는 대학의 미래가 어둡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재정적으로 열악하거나 급박한 위기에 직면한 일부 대학은 정부의 소규모 재정지원사업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정부의 모든 정책이나 방향에 전적으로 예속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에 따른 규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대학 운영 자율성은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올해 초 고등교육 정책 중 과도한 규제로 대학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86개 규제 내용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기대와 높은 책무성에 비해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 사회적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보니 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발전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교육부에 전달한 규제 내용 중에는 등록금과 사립학교 교직원 퇴직수당 제도 등 재정·회계 분야 규제 개혁이 가장 시급하다는 점이 포함돼 있다.

■ 재정 자율성에선 中·日이 韓 앞선다 =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2004년 일괄적으로 법인화된 국립대는 문부과학성이 제시하는 등록금 표준액을 따르지만 사립대학은 해당사항이 없다. 정부가 제시하는 등록금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또한 일본 문부과학성은 사립대학에 일반 경상비 지원성격으로 경상비와 교육 연구 고도화를 위해 특별 보조금을 지급한다. 한국 정부에서 하는 재정지원사업과 유사하지만 이에 따른 등록금 인상 규제나 구조개혁을 위한 정원 감축,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등 법적 제재를 병행하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에는 강력한 ‘실용주의’를 내세워 대학이 재정 수입을 다양화해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대학과 사정이 확연히 다르다.

중국은 정부나 지자체가 중점대학을 선정해 지원금을 지원한다. 베이징시에 있는 수도사범대학의 경우에는 베이징시 중점대학으로 선정돼 중앙정부에서 지원금을 일부 지급하고, 지자체인 베이징시에서 재정을 상당 수준 지원한다. 이 외에도 등록금 수입, 대학이 운영하는 학교기업 수익금, 유학생 유치로 인한 수익금 등이 재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입시제도에서 3불제(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 금지) 중 하나인 ‘기여입학’도 허용된다. 다양한 기부금과 수익금을 통해 중국 대학들은 재정 수입 다원화를 이뤘다.

■ 대학자율성의 핵심은 다양한 재정확보 통로 보장 = 이에 따라 한국대학도 등록금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재정 수입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등록금에 의존할 경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열악한 재정 상황을 해결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한 번에 등록금을 인상하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구자억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한중교육교류협회 회장)은 “교육의 기본 역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학협력을 활성화해 ‘학교 기업’을 통한 수익금을 활용해야 한다. 베이징대가 설립한 학교 기업인 ‘북대방정’은 지금의 삼성그룹처럼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학교 기업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고 점차적으로 규제를 만드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 연구원은 “지방 정부에서도 고등교육기관에 재정을 지원하고 대학이 기부금 유치에도 적극 나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대학 재정 수입원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단 지원한 정부재정을 해당 대학이 운용함에 있어 가능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정부재정지원 사업의 경우 인턴십 지원사업, 장애우 지원사업 등 목적이 뚜렷해 해당 분야에만 한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실제 대학마다 시급한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면서 “다만 ACE사업의 경우 사용 가능한 범위가 비교적 넓지만 예산 집행에 대한 통제와 점검이 매우 철저하다. 관리를 위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선 자율적인 대학협의체의 확대·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김석준 안양대 총장은 “대학과 정부가 함께 고등교육 정책과 방향을 논의할 수 있는 다양한 기구가 필요해보인다.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책이나 방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기구들이 있어서 거버넌스 측면에서 고등교육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총장은 이어 “5.31교육개혁 이후 이제는 우리나라가 교육정책에서 세계를 이끄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받는다”며 “여전히 사람들은 각기 일본이나 독일, 미국의 대학에서 우리 모델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누굴 따르기 보단 독자적인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립대는 미국처럼 나갈 필요가 있고, 국공립대는 독일이나 일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