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기동 연세대 명예교수(한국담화인지언어학회 초대회장)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지독한 중독이다. 지난 6월 ‘이기동의 영어 형용사 연구’를 펴낸 이기동 연세대 명예교수를 두고 하는 소리다. 이기동 교수는 스테디셀러인 ‘전치자 연구’의 저자이자 인지언어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발전시킨 인지언어학의 선구학자다. 국제인지언어학회(International Cognitive Linguistic Association)의 첫 아시아인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영어교과서 검정을 맡았으니, 영어 공부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의 책을 한번쯤 거쳐간 셈이다. 그런 이 교수라도 488페이지 분량의 책 두 권을 펴내기까지 실로 학문에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가 10여 년 째 병마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동 교수는 지난 2006년 1600페이지에 달하는 ‘영어동사사전’ 편찬 도중 과로로 쓰러졌다. 이후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웠다. 긴 투병생활의 시작이었다. 학문을 다시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시력이 악화됐다. 당뇨 합병증이었다. 현재 그는 두 발을 쓰지 못해 휠체어로 거동하고, 이틀에 한 번씩 신장 투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착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야 했다고 하더랍니다. 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그 사람은 지옥이라도 좋으니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답니다. 이것이 내가 병상에 있을 때의 심정이었어요.”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잠을 잘 못 주무셔서 쓰러지신 것 같다”며 그의 아내 서병옥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안타까워했다. 평소 아침 6시에 책상에 앉아 연구를 하고, 밤늦도록 책과 시름하던 남편이었다. 그 흔한 취미도 하나 없었다. 학문을 하는 게 즐거운 일이고, 학문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푼다고 했다. 꿈에서도 연구주제를 생각한다며 잠을 설치던 남편이 걱정스러워 서 일부러 방해도 해봤다. 하지만 병상에서마저 연구를 포기하지 못한 남편을 본 그녀는 결국 그의 눈과 손발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일반 연구자보다 곱절은 더디고 힘든 과정이었다. 아내 서병옥 씨가 한 문장씩 읽어주면 이기동 교수는 아내에게 뺄 부분을 알려주며 저서를 작업했다. 그의 연구는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세상에 빛을 봤다. 책이 완성되면서 전치사, 동사, 형용사로 이어지는 이 교수의 ‘영어 어휘 인지문법 연구’ 시리즈도 비로소 완성됐다. 오는 12월에도 영어 문법과 관련된 새 책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교수는 “살아나니 또 (연구가)하고 싶었다”며 “답답하고 힘든 작업을 통해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출간된 책의 첫 장에는 ‘아내에게 바친다’는 글을 새겼다. 인터뷰 내내 그는 거듭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최근 대학에선 학문이 곧 성과의 척도로, 대학 평가의 지표로 변질되고 있다는 성토가 나온다. 학문을 소홀히 하는 학자도 대학가에서 문제지만, 학문과 연구가 수단화 되어 가는 상황도 씁쓸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이 즐거워 꿈에서도 연구했다는 노학자의 열정은 학문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기동 교수에게 학문의 의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지만 학자로서는 그게 없으면 생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계속 연구하는 것이 바로 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처럼, 하루라도 (학문과 연구를)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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